“조상 묻힌 땅… 팔순 넘어 돈 보고 이러겠나” 울먹여

“조상 묻힌 땅… 팔순 넘어 돈 보고 이러겠나” 울먹여

입력 2013-05-23 00:00
수정 2013-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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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송전탑 공사현장

“나 혼자 누워 있으면 끌어낼까 싶어 다른 할머니들과 몸을 묶었어.”

한전이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사흘째인 22일 경남 밀양시 평밭마을 127번 송전탑 공사장에서 공사를 반대하는 한 할머니가 공사장 진입을 막는 한전 직원들 사이를 기어서 돌파하고 있다.  밀양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한전이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지 사흘째인 22일 경남 밀양시 평밭마을 127번 송전탑 공사장에서 공사를 반대하는 한 할머니가 공사장 진입을 막는 한전 직원들 사이를 기어서 돌파하고 있다.

밀양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22일 오전 8시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 중턱.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팬 70~80대 할머니 8명이 2명씩 짝을 이뤄 나일론 줄로 서로 몸을 묶은 채 송전탑 건설을 위해 벌목작업 현장에 있던 굴착기 1대를 감싸고 누웠다. 인근 평밭마을에 사는 이 촌로(村老)들은 새벽 4시에 손을 잡고 이곳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평생 한마을에 산 할머니들은 이틀 전 건설이 재개된 765㎸급 고압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박모(86) 할머니는 “팔순 넘어 돈 바라고 이러고 있겠느냐. 보상은 10원 한 푼 바라지 않는다”면서 “송전탑이 서고 고압선이 지나면 벌, 나비가 사라진다더라. 이 선산에 우리 조상님이 묻혔고 마을에 내가 사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울먹였다. 할머니들의 바지 주머니 속에는 인분이 든 생수병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공사 인부들이 끌어내려고 하면 뿌릴 요량이었다. 그만큼 비장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시위는 공사 재개 사흘째인 이날도 계속됐다. 송전탑 공사가 진행된 4개 면의 반대 주민들은 한국전력·경찰과 충돌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주민들이 대부분 60세 이상인 고령인 탓에 시위가 계속될수록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화악산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엊그제 알몸 농성을 하다 실신했던 이모(82)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헛소문이 돌아 아침부터 하염없이 울었더니 몸이 식어서인지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둘러본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조사관은 “다른 농성 현장과 달리 대부분 고령자여서 건강이 크게 염려된다”고 말했다.

오전 8시쯤 또 다른 송전탑 공사 현장인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 백마산 정상에서는 주민 손모(62)씨와 박모(60)씨가 한전의 공사를 저지하려다가 머리 등을 다쳐 소방헬기로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2명의 주민은 한전이 공사 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굴착기에 밧줄로 몸을 묶고 저항하다 경찰에 제압됐다. 손씨 등은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굴착기에 머리를 부딪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두 사람은 병원에 이송된 뒤 의식을 회복했다. 20일 송전탑 공사 재개 이후 충돌 과정에서 다친 주민은 이날까지 모두 12명이다.

반대 주민들은 고압선을 잇는 송전탑 공사 탓에 밀양이 기피 도시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계삼 밀양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면서 일부 주민의 자녀는 ‘전자파가 건강에 해로운 것 아니냐’며 제사 때도 찾지 못할 것 같다고까지 했다”면서 “청정 지역이었던 밀양이 원전 사고가 터졌던 후쿠시마처럼 안 좋은 이미지를 덧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밀양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밀양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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