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전자파 유해 ②’블랙아웃’ 논란 ③전력선 지중화 ④밀양서만 유독히 반대 왜 ⑤전문가협의회 구성
765㎸급 고압 송전탑 공사를 놓고 경남 밀양 주민들과 한국전력 간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달으면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쟁의 밑바탕에는 주민 건강권과 전력수급 대란 가능성 등 지역 주민과 한전의 현실적 우려가 깔려 있어 절충안 마련이 쉽지 않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대통합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사회갈등 조정 능력을 가늠해 볼 첫 시험대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송전탑 건설의 쟁점별 찬반 입장과 전문가 견해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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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765㎸ 송전탑 전자파, 노인 건강에 치명적인가
송전탑 건설을 결사 반대하는 주민들은 우선 “전자파가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한전은 “송전탑 위 고압선이 뿜는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선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체 위해성 여부를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며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구진회 국립환경과학원 생활환경연구과 연구원은 22일 “고압 송전탑의 전선은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 전자파가 주민 생활권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세계보건기구(WHO)가 10년 이상에 걸쳐 3~4mG 이상의 전자파에 노출되면 소아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2배 증가한다고 경고하는 등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낫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송전탑 전자파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백정기 충남대 전파공학과 교수는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송전탑의 높이나 최신 기술 등을 고려할 때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김재철 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도 “고압 송전탑의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은 전기장판보다도 낮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②송전탑 건설 지연되면 ‘블랙아웃’?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측은 8개월간 중단했던 밀양 송전탑 건설을 지난 20일 재개하면서 “송전탑을 연말까지 짓지 못하면 오는 12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는 신고리 원자력 3호기(140만㎾)의 전력을 제때 실어 나를 수 없어 올겨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까지 예견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전력예비율이 5.5%까지 떨어져 전력수급 대란이 가시화됐던 악몽을 환기시키며 송전탑 건설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한전 측의 블랙아웃 주장은 매우 과장됐다”고 맞받아쳤다. 이계상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는 대신 기존 송전선로의 용량을 높여 신고리원전 3·4호기가 생산할 전기를 실어 나르면 새 송전탑이나 송전선 건설 없이 경남권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양산~동부산, 신울산~신온산 송전선 등 현재 건설 중인 간선노선을 신고리발전소와 연결하는 방법으로도 정상적인 전력 수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기존 선로를 이용하면 과부하로 인한 정전 우려가 높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반대 주민들의 논리가 언뜻 타당해 보이나 전력 수급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사고 발생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책을 세워야 하기에 송전탑을 기간 내에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송전탑 건설 때 계획 단계부터 주민을 참여시키는 등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③평행선 긋는 ‘전력선 지중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의 대안으로 “지하에 터널을 만들어 밀양을 지나는 송전선 30㎞ 구간을 땅에 묻으라”며 ‘지중화’를 요구한다. 지중화가 되면 마을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전자파가 주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한전 측은 “지중화 작업을 하려면 공사 기간이 약 12년 이상 걸리고 공사비는 약 2조 7000억원이 들어 실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주민들은 “과거 남부산~북부산 22㎞ 구간의 도심 지중화 때 공사비가 2788억원 들었다”며 한전 측 주장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전은 765㎸급 고압선의 지중화는 현재 기술로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④다른 지역은 ‘OK’했는데 밀양은 왜?
한전은 애초 신고리 원전 3호기가 만든 전기를 경남 창녕군의 북경남변전소까지 90.5㎞를 보내기 위해 경남 5개 시·군에 송전탑 161기를 세우기로 했다. 송전탑 건설 추진 8년이 지난 현재 밀양시 4개면을 지나는 송전탑 52기를 제외한 109기는 모두 완공됐다. 한전 측은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부산 기장군, 경남 양산시·창녕군, 울산 울주군 등에서는 초기 주민의 반대가 심했지만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며 밀양의 반대 주민들을 압박했다. 한전 측 관계자는 “밀양 시민은 기장 등 다른 지역 주민과 달리 대형 송전탑을 가까이에서 접한 적이 없고 공단 시설도 없어 송전탑 건설에 따른 심리적 거부감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전 관계자는 “밀양 주민들이 처음에는 보상 문제를 두고 다퉜는데 지금은 반핵 단체 등 외부 단체가 개입하면서 입장이 더 강경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러한 주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이 사무국장은 “고압선이 주로 산위를 지나는 다른 시·군과 달리 밀양에서는 가옥과 학교 주변, 논·밭 위 등을 지나는 경우가 있어 심리적 위협감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온 밀양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이남우(71) 주민대책위원장은 “70~80대 마을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뛰놀던 앞산과 개울 등에 송전탑이 서고 고압전선이 지나간다고 하니 건강과 경관이 상할 수 있다는 마음에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노인들의 뜻을 폄훼하는 한전의 언동이 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다.
⑤전문가협의회 구성을 둘러싼 한전·주민 간 입장차
송전탑건설반대대책위는 “송전탑 건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한전의 사업계획과 주민들의 대안이 타당한지 따질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하자”고 한전 측에 제안했다. 대책위는 협의체에 한전과 대책위가 추천한 전문가 6명을 참여시켜 3개월 동안 대안을 검토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전 측은 “연말까지 송전탑을 완공해 정상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협의체 구성을 하더라도 공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밀양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3-05-2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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