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제 처가 절 죽이려 했단 말 개의치 말고 용서해 주세요”
“판사님, 제 처가 저를 죽이려 했다고 하는데 그런 말에 개의치 마시고 그냥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부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14일 오전 11시 20분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서울 남부지법 406호 법정. 피고인석 뒤로 설치된 스크린 속에 남편 전모(81)씨의 증언 영상이 흐른다. 모진 마음을 먹고 한때 살해하려 했던 남편이 자신을 변호하자 이씨(71)가 숨죽여 흐느낀다. 노부부의 때늦은 화해에 방청객 30여명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11시 20분쯤 서울 강서구 공항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정용 변압기로 남편 전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남편을 해하려 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작고 깡마른 체구의 이씨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이씨는 재판 내내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난 50년간 화목하게 살아 온 부부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6년 전. 갑작스럽게 남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다니며 살뜰히 보살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 치매가 온 전씨는 툭하면 이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의처증도 심해졌다. 지난 추석에는 가족들에게 “네 엄마가 다른 남자와 놀아난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에도 병원에 다녀온 이씨에게 남편은 “어떤 놈을 만나고 왔느냐”고 욕을 하며 다그쳤다.
다시 한바탕 난리를 피운 날 밤 이씨는 아무 일 없는 듯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치가 떨리게 미웠다고 했다. “순간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은 코를 골며 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끌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어요. 그동안 맞고만 살았으니 남편을 혼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술을 하던 이씨가 감정이 북받쳐 소리내 울자 아들이 달려와 어머니를 감싸 안았다. 감정을 추스른 이씨는 “내가 잘못했어요”라는 말을 되뇌었다.
배심원단은 2시간에 가까운 평의 끝에 다수결로 “살해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재판부는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로 인정한다”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남편과 자식들이 눈물로 선처를 호소한다는 점, 또 피해자가 정성껏 병수발을 해 온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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