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VVIP’ 핵심은 비켜간 언론풍자 코미디

[연극리뷰] ‘VVIP’ 핵심은 비켜간 언론풍자 코미디

입력 2010-09-17 00:00
수정 2010-09-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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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시작된 이후 ‘병신 삽질한다.’는 말도 정치적인 말이 되어 버렸어. 이젠 웃을 거리가 없어요.” 뒤이어 저 높은 곳에 계신 ‘그 분’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들려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걱정말아요. 이런 건 방송에서 안 하니까. 그랬다간 나도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사찰받을지 몰라. 요즘엔 입조심 몸조심이 최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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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VVIP’(박혜선 연출, 이다엔터테인먼트·극단 전망 제작) 도입부에서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강한철(사진 가운데)이 늘어놓는 넋두리다. 영국 원작을 번안한 작품인데 ‘김제동·김미화 사태’ 등 최근 우리 상황을 녹여낸 솜씨가 제법이다. 집중력 강한 창작 희곡으로 올 상반기 화제를 모았던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가 번안 작업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강한철은 어느날 프라이빗 뱅크에서 나온 직원 이항복, 오나래에게 불려간다. VVIP 고객으로 특별관리해줄테니 VVIP고객들을 위해 강연 한 번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항복은 갖은 아양을 떨어대고, 오나래는 슬쩍슬쩍 노출해주면서 강한철의 환심을 사려한다. 서서히 경계심을 늦춰가던 강한철.

그러나 오나래와 술 마시다 마약에 손대고, 오나래를 겁탈하려 든다. 이항복, 오나래의 정체가 이 때 드러난다. 창간을 앞둔 옐로 언론의 편집장과 기자였던 것. 알코올 중독에 마약 중독에 성폭행 미수까지. 창간 특종에 걸맞은 반찬들이다. 강한철은 모든 일에서 쫓겨나고 만다.

블랙코미디인 만큼 진하게 배어 있는 풍자가 좋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원작의 포인트는 도덕성의 잣대로 대중스타의 위선을 쥐락펴락하면서 결국 제 잇속 챙기기에 여념없는 옐로 저널리즘 문제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신정환, MC몽, 4억 명품녀 등 최근 연예계 이슈들을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비틀기를 시도할 대목도 많아 보인다. 4대강, 천안함, 인사청문회, 여당의원 사찰파문 같은 것들보다 연예인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왜 그리 유독 거창한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작품이 던지는 한국적 상황은 도입부의 코미디에만 그치고 만다. 정작 언론 문제를 건드리질 않으니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극 막바지에는 부활을 노리는 강한철의 개인적 욕망만 남는다. 그에게도 언론 시스템에 ‘놀아난’ 희생자적 성격이 있음에도 말이다. 블랙 코미디의 좋은 소재가 눈앞에 있는 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9-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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