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씨(51세, 현 민족미술인협회 회원)는 버려진 복권에 그림을 그리는 유일무이한 화가다. 캔버스 크기가 되도록 복권을 이어붙이고 그 위에 인두로 열을 가한다. 감열지인 복권 종이가 열을 받으면 검게 변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한때 누군가의 희망이었을 복권 위에는 거리에서 돈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와 판자촌에서 고된 삶을 보내는 가장의 모습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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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이철재 작가는 그 생업 때문에 복권으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의 가게 송정슈퍼가 있는 곳은 서울 공항동의 송정역 부근. 김포와 강화 등 서울 외곽 지역과 서울을 잇는 송정역 주변은 낮에는 서울에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러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다. 서울의 방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송정슈퍼에 들러 라면이나 담배 등을 사고, 가능성이 희박한 꿈을 꾸며 복권을 산다. 이철재 작가는 그들에게 하루에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장에 달하는 복권을 팔고 있다. 그리고 사자마자 당첨 여부를 확인한 사람들은 낙첨한 복권을 그 자리에 버리고 간다.
이철재 작가는 복권이 버려지듯 그들의 희망도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붙여놓은 로또는 그 상태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복권이 서민의 애달픈 삶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복권에는 개인의 희망과 낙담, 삶의 애환과 설렘 등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그래서 그는 버려진 복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버려진 희망들을 모은 것이다.
복권 그림으로 겸재정선기념관 등에서 전시를 했던 이철재 작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이 없어 다섯 평 슈퍼나 좁은 거실에서 작업을 했다. 그런 그에게 작업실이 생겼다. “소외된 자, 가난한 자, 약자의 입장에 서고자 노력하게 된다”는 그의 열정이 가득 찬 곳이다. 이곳에는 앞으로도 버려진 복권들이 쌓일 것이고, 삭막한 현실에서 희망을 말하는 작품들이 탄생할 것이다.
김하늘 대학생 명예기자(광운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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