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키워드’… ’시대유감’ 사라진 노랫말

대세는 ‘키워드’… ’시대유감’ 사라진 노랫말

입력 2012-07-29 00:00
수정 2012-07-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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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경쟁 치열해지며 사회성 반영한 가사 뜸해져

“검게 물든 입술 /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 숱한 가식 속에 /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시대유감(時代遺憾)’ 중 일부다.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원조 아이돌’ 서태지와 아이들은 만 4년간의 활동 기간 동시대 청년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메시지를 꾸준히 노랫말에 담아내며 ‘청년 문화’를 선도했다.

반면 요즘 가요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곡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사회성을 반영한 ‘메시지’를 읽어내기 힘들다.

실제로 음악 사이트 멜론이 지난 28일 발표한 일간 차트(27일 기준) ‘톱 20’을 살펴보면 무려 18곡이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개그팀 용감한녀석들의 ‘봄 여름 여름 여름’ 등 나머지 두 곡 역시 재미에 초점을 맞춘 곡이어서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다.

’시대유감’이 사라진 자리는 대신 ‘외계어(외계인이 쓰는 말처럼 이해하기 힘들다는 뜻)’가 메웠다.

소녀시대의 ‘지(Gee)’, 티아라의 ‘보핍보핍(Bo Peep Bo Peep)’, 달샤벳의 ‘수파 두파 디바(Supa Dupa Diva)’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 중에는 선뜻 의미를 알기 힘든 의성어로 뒤덮인 가사가 많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음악 시장의 구조 변화가 낳은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작곡가 김도훈은 “음악 시장이 음원 중심으로 바뀌고, 음원의 유통 주기도 점점 짧아지면서 노랫말도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음원 홍수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면 귀에 쏙 들어오는 ‘키워드’가 필요한 게 현실”이라면서 “특히 퍼포먼스가 중요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키워드 경쟁이 심하다”고 덧붙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도 “음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되는 코드’만 반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모든 노래가 ‘메시지’를 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은 “노랫말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노래에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면서 “음악의 창작자, 그리고 수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 볼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진지한 주제로 진지하게 노래하는 뮤지션도 있지만, 같은 주제를 굉장히 상스럽게 표현하는 뮤지션도 있을 수 있다. 즉 노랫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창작자의 개인 성향이고 재량”이라고 강조했다.

한 유명 작곡가 역시 “요즘 가요계의 주류를 이루는 아이돌의 음악은 대체로 댄스곡인데, 댄스곡은 가사보다는 라임(rhyme·운율)이 더 중요하다”면서 “가사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가볍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멜로디와 비트, 퍼포먼스까지 놓고 보면 완성도 높은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추세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을까.

정덕현 평론가는 “비트 위주의 노래가 유행하는 반면 그 반대급부, 즉 ‘메시지가 있는 노래’에 대한 대중의 욕구도 상당히 커져 있다. 각종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아날로그 세대의 노래를 경쟁적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개가수(개그맨+가수)’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 역시 직설적인 가사의 힘이 크다고 본다. 그만큼 ‘가사’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큰 것”이라면서 “결국 문화는 대중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의 욕구가 커지면 노랫말의 유행 역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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