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쉬어 보지 못한 날이 있다. 바로 선거일이다. 모든 부서가 선거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선거를 챙겨야 하는 부서에 있었던 것 같다.
선거권을 가진 뒤 유일하게 투표하지 못했던 날도 기억난다. 2010년 6월 제5회 지방선거 선거일이었다. 선거 연관 부서는 아니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정치부 선배를 보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출발 전 집 앞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갈 법도 했지만 초년생이었던 나는 그저 처음 가 보는 곳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1시간마다 발표되는 투표율을 챙겼는데, 그 안에 나의 한 표는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통념상 ‘선거일=쉬는 날’이라지만 선거일의 법정공휴일 지정은 2022년에야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근로자가 투표할 시간을 청구하면 고용주는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문제는 선거일에 쉰다고 해도 투표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사정이 저마다 상당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경우다.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가족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세대 분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 선거권을 행사하려면 당일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다녀와야 하는데 여기서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곤 했다.
이러한 유권자를 위해 2005년 부재자투표 요건을 폐지했으나 투표율 제고 효과는 미미했다. 사전신고의 번거로움, 적은 수의 부재자투표소 등 걸림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사전투표다. 2012년부터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 2014년 6월 4일 제6회 지방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사전투표가 시행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였다.
사전투표 수요층이 아무래도 관외로 나간,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다 보니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사전투표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받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그중 하나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미 여러 차례 대법원에서 결론이 난 사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음모론에 동조해 사전투표 폐지에 시동을 거는 듯한 국민의힘의 최근 움직임이다. 한 언론사 논설위원도 음모론과 별개로 사전투표가 평등성에 위배되는 점이 많다며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여론조사가 사전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면 공표 금지 기간을 늘리면 될 일이다. 중대 이슈는 본투표 날에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선거운동 기간 역시 늘리면 된다.
중앙선관위가 한국갤럽을 통해 제22대 총선 유권자 의식조사를 한 결과 93.0%가 ‘사전투표제가 투표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사전투표자의 25.1%는 ‘사전투표제가 없었다면 투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의혹 수준도 안 되는 음모론에 떠밀리는 듯한 모양새도 우습지만 음모론을 틈타 눈엣가시를 없애고 싶은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신진호 뉴스24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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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뉴스24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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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뉴스24 부장
2025-02-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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