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아이텔, 플레이스홀더展 학고재갤러리서 亞 첫 전시

팀 아이텔, 플레이스홀더展 학고재갤러리서 亞 첫 전시

입력 2011-09-03 00:00
수정 2011-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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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풍경에 정적 인물… 관객이 ‘소외’ 떠올리게 해

제목에 ‘검은’(Schwarz)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배경은 무채색, 그것도 검은색과 회색 같은 어둡고 낮은 색깔이 주로 쓰였다. 덕분에 모든 그림은 아래로 내려앉은 듯 균형 잡히고 안정적이다. 세로 길이만 2m 60㎝에 이르는 ‘검은 모래’(Schwarzer Sand) 작품은 푸른 하늘이 화면의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시선은 그 위 하늘보다는 그 아래 검은 흙바닥 부분으로 향한다. 면적은 작지만 더 크고 무겁고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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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 인물을 작게 처리한 빈 공간을 통해 현대인의 우울함과 공허함을 드러냈다.
‘검은 모래’. 인물을 작게 처리한 빈 공간을 통해 현대인의 우울함과 공허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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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화가
팀 아이텔 화가
작가는 “인물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그리는 구상적 기법으로 접근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전체가 포토리얼리즘은 아니다.”라면서 “좀 더 나만의 색깔을 넣기 위해 풍경은 추상적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구상적 인물을 추상적 배경 속에 던져 넣음으로써, 그러니까 인물을 배경에서 소외시키면서 그 인물은 배경에 고정되기보다 관람객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그림 속 인물들 가운데 극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는 이들은 없다. 가로 2m 10㎝의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 작품에는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이 다섯 명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튀는 동작이나 표정은 선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 튀는 동작·표정 안 보여

가로·세로 17.8㎝의 소품 12개를 나란히 세워둔 ‘경기장’(Stadien)도 마찬가지. 육상 트랙 풍경인데 그 어느 곳에서도 육상선수 특유의 말 근육은 보이지 않는다. 관객석의 열띤 응원도 없다. 빈 트랙, 혹은 괴로워하는 듯한 선수의 뒷모습 정도만 있다.

대작은 물론 아주 작은 소품까지도 깊다 못해 그윽한 맛이 있다.

작가는 “현대사회와 소외의 문제에 대해 관객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움직임과 표정에 제한을 둬서 관람객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정지된 듯하면서 뭔가 슬로모션으로 슬그머니 움직일 것 같은, 묘한 균형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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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
‘점유’.
●정지된 듯 움직일 듯 묘한 균형감 특색



10월 24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전에 나온 팀 아이텔(40)의 작품들이다.

아이텔은 뉴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주자로 세계 화단의 눈길을 끌고 있는 독일 작가다. 뉴라이프치히 화파란 1990년대부터 ‘괴테와 바흐의 도시’ 라이프치히에 몰려들어 평면 회화의 부활을 외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다. 아이텔은 전시에 맞춰 내한했다.

노마디즘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이텔의 작품이 삶의 깊은 뿌리와 뿌리의 상실감을 느끼게 해서다. 그의 작품에는 갈 곳이 딱히 없어 보이는 방랑자, 넋 나간 듯한 남자, 지쳐 버린 노동자, 저 골목 너머 슬그머니 사라지려는 노숙자 같은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전시 제목마저 ‘플레이스홀더’다.

“좋아하진 않아요. 미국 뉴욕에 1년 머물렀던 적이 있고, 지금도 주된 작업은 프랑스 파리에서 합니다. 아무리 세계화, 유럽통합 이런 얘길 해도 그런 곳들이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관점이긴 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노마디즘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작품은 아니라고 했다. “이를테면 케이크를 먹을 때 케이크가 흩어지지 않도록 꽂아 두는 도구 같은 겁니다.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서 넘어갔던 것, 그걸 다시 상기해 보자는 거지요.”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가는 원래 슈투트가르트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미술은 독일 통일 뒤 라이프치히대학으로 건너가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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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
●세상에 ‘어떤 의미’ 던진 문학적 붓터치

아이텔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수동적 행위지만, 그림은 세계에 어떤 의미를 던질 수 있는 능동적 행위라 더 좋았다.”고 했다. 철학이 빠졌으니 남은 건 문학. 결국 문학적 붓질인 셈이다. 멋쩍었는지 “그냥 손으로 뭔가 꾸준히 하는 게 좋다.”며 웃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 첫 전시다. (02)720-152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9-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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