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에서 배운다] “1000m 갱도서 목숨 걸고 작업… 한국 가족 위해 밤낮없이 일했죠”

[통일독일에서 배운다] “1000m 갱도서 목숨 걸고 작업… 한국 가족 위해 밤낮없이 일했죠”

입력 2014-03-26 00:00
수정 2014-03-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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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 출신 이병종씨

“돈을 벌기 위해 독일에 갔지만 아직도 형편이 되지 않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광부와 간호사가 많습니다. 국가가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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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씨
이병종 씨


경남 남해 독일마을에 살고 있는 파독 광부 출신 이병종(69)씨는 25일 “1970년 4월 서울신문에 난 독일 광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같은 해 7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갔다”며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렸다. 이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월급 8000원을 받는 체신공무원으로 일하다 독일에 광부로 가면 한 달에 5만원을 저금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다”고 광부가 된 동기를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일자리가 없어 160명을 모집하는 광부에 전국에서 4000여명이 지원을 했다. 간호사 모집도 비슷하게 경쟁이 치열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30㎏짜리 모래주머니를 들고 달리는 체력시험을 비롯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일 파견 광부로 선발돼 독일로 가 계약 기간 3년 동안 탄광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밤낮없이 일하고 받은 돈을 한국으로 송금했다”고 회상했다. 또 “광부들은 수직으로 1000m가 넘는 지하 갱도에서 석탄을 캐는 작업을 했으며 갱도가 무너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3년간 광부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일반 회사에 취업해 65세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근무했다. 그는 독일로 간 2년 뒤, 역시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세 자녀는 독일에서 대학을 마치고 의사와 작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2009년 부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독일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광부나 간호사 출신으로 은퇴한 뒤 독일에 살고 있는 교포들은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도 경제적인 형편이 되지 않아 눌러앉아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이 적은 부담으로 한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2014-03-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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