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법정구속’ 확 바뀐 재벌 판결공식

‘집행유예→법정구속’ 확 바뀐 재벌 판결공식

입력 2013-09-13 00:00
수정 2013-09-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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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한화·SK 이어 LIG 오너도 구치소 신세

법원이 13일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를 받는 구자원(78) LIG그룹 회장을 법정구속하면서 재벌 총수들의 경제범죄에 대한 엄벌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여든에 가까운 고령의 피고인을 법정구속하는 일은 다소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구 회장이 2010년 9월 간암수술을 받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언급하면서도 끝내 구치소로 보냈다.

아들 구본상(43) LIG넥스원 부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8년형 역시 꽤 무겁다. 과거 법정에 선 재벌 총수 가운데 이보다 높은 형을 받은 사례는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도다.

과거에는 재벌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르고도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 등이 고려돼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 오너들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법정구속이 집행유예를 대신해 ‘재벌총수 판결공식’이 됐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런 변화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1천400억원대 횡령·배임 사건 재판부터 감지됐다.

구속기소된 이 전 회장은 재판 도중 간암수술을 받고서 건강 상태를 참작해달라고 호소했지만 1·2심에서 모두 징역 4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2월 1심 선고 당시 84세의 고령이던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재판부는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혀 재벌들의 조직적·지능적 경제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벌 의지를 명확히 했다.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징역 4년은 검찰의 구형량과 같았다.

이날 구씨 부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용관 부장판사)는 양형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린 점을 가장 먼저 들었다. 국가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단골로 언급하면서 집행유예로 풀어주던 과거 판결과는 정반대다.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규모가 2천87억원에 이르는 등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총수 일가의 욕심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점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대주주나 전문경영인에게 이익이 직접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벌하지 않는다면 이런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중대한 기업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며 ‘일벌백계’의 의지를 천명했다.

총수 일가는 금융감독원과 검찰·법원을 거치면서 말을 계속 바꾸고 관련 문서를 폐기·조작하는 등 범행을 숨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 중형을 자초했다.

법원의 이런 엄벌 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도입된 횡령·배임 범죄의 양형기준에는 과거 재벌들의 판결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경제발전 기여’ 등의 항목이 없다. 새 정부 들어 형성된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하기 어렵다.

현재 경제범죄로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재벌 총수는 이달 말 항소심 선고를 앞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1심 재판이 막 시작된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다. 이 회장의 재판은 이날 구자원 회장을 법정구속한 재판부가 맡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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