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여전한 의료계 현주소


환자 성정체성 고려 않고 성경험 질문
과한 신체 접근·접촉 등 성추행 제보도
민우회 “성범죄 의사 면허 즉시 정지돼야”


여성들이 병원을 방문해 진료나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의료진으로부터 반말과 사생활 침해, 성폭력 피해 등 부당하고 불쾌한 경험을 많이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6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3~9월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의료 경험 사례 330개 중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불쾌했던 의료 경험이 있다’는 사례는 319개(96.7%)에 달했다. 이 중 의료진의 ‘무례한 언행’(166개) 피해가 가장 많았다.
여성들은 병원에서 외모와 관련한 말을 많이 들었다. 10대 여성 C씨는 “생리를 6개월 넘게 하지 않아 산부인과를 방문했는데 의사가 별도의 질문이나 검사도 없이 내 체형만 보고선 ‘살찐 게 원인’이라며 검사를 못 하게 했다”면서 “그래도 검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돈 낭비’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여성도 “감기 때문에 갔는데 의사가 다짜고짜 내 몸무게를 묻더니 ‘살이나 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과 성추행·성희롱 사례도 많았다. 30대 여성 D씨는 “고등학생 때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의사가 ‘귀를 보게 가까이 오라’고 해서 처음엔 가까이 갔다. 그런데 의사가 내가 앉아 있던 의자를 불필요할 정도로 바짝 끌어당겨서 내 몸이 의사의 다리 틈에 낄 지경이었다”면서 “좀 떨어지려고 하니까 의사가 내 의자를 다시 끌어당겼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여성들은 의사로부터 “출산하면 병이 낫는다”, “왜 결혼을 안 했냐”는 식의 말을 많이 듣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의사가 이분법적 성별로 분류할 수 없는 환자의 성별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 환자에게 남성과의 성 경험을 묻는 일도 많았다.
사례집을 발간한 민우회는 의사를 대상으로 성인지·젠더 감수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우회는 또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의료법 위반 사항이 아니면 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최소한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의사의 면허자격은 즉시 정지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 또 의사의 성범죄 전력이 소속 병원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같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의무 공개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우회는 여성들의 의료 경험을 담은 리플릿을 전국 병원 500곳과 의과대학 42곳에 발송하는 등 ‘존중이 오가는 진료 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20-12-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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