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억씨 “어릴 땐 종손이 부담… 이제는 공부하는 힘”
“종손이란 자리가 어릴 때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이제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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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억씨
경북 안동 도산서원 인근 종가에서 태어난 이씨는 종손이란 이유로 남들과 다른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관을 갖추고 사당 참배를 한 후에야 아침 식사를 했고 사당에 제를 올린 후 외출을 할 정도였다. 친구들과 똑같은 장난을 쳐도 가장 많이 꾸지람을 들었다. 숨이 막혔다. 부담감을 못 이겨 이씨는 고향을 떠났다. 일본 메지로대학에서 아시아 지역문화를 공부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택한 유학이었다.
이씨가 유교에 마음을 연 것은 2001년 안동에서 열린 ‘퇴계 탄신 500주년’ 기념 행사 때였다.
“세계 석학들이 유학자 퇴계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종손으로서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유학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알게 됐죠.” 이듬해 이씨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2005년 학위를 받은 후 바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박사논문 주제는 ‘퇴계의 주리철학’. 하지만 아버지 이근필(82)씨는 아들이 택한 화두에 반대했다. 논문을 쓰려면 비판이 필요한데 굳이 선조의 사상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대학자가 40여년을 공부하고 50세가 넘어서야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했던 철학을, 겨우 10년 남짓 공부한 제가 논한다는 것이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마음을 채찍 삼아 더욱 배움에 정진하려 합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2013-01-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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