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산중에..”못다한 배움의 끈 이어가겠다”
환갑을 앞둔 스님이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 늦깎이로 재취학해 화제가 되고 있다.주인공은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지장암 주지인 원경(圓炅.58.속명 정성도) 스님.
18일 성산읍 신산중학교 3학년에 재취학한 그는 새로 맞춘 교복이 어색한지 쑥스럽게 웃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지 꼭 40년 만이었다.
그가 교실에 들어서자 손자뻘 되는 학생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전교생이 60여명에 불과한 미니 학교는 곧 시끌벅적한 잔칫날이 됐다. 전날 미리 인사 왔던 스님을 아는 체하는 3학년 1반 학생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스님을 바래다주러 온 여동생(55)은 감격에 겨워 연방 눈물을 훔쳤다.
그는 열일곱 살이던 1970년 새로 생긴 신산중학교에 배속돼 다니다 남의 집에서 밭일한 돈으로 4남 5녀를 건사해야 했던 어머니가 월사금을 내지 못하면서 결국 3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도포기해야 했다.
당시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는 그는 바로 군에 입대했고 이후 고향을 떠나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06년 태고종립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하며 출가했다.
언젠가는 학업을 계속하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2년 전 작고한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용기를 내 학교 문을 두드렸다. 한국 전쟁 당시 해병대 3기로 참전했던 선친이 오랜 소송 끝에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자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렸으니 이제 못 배운 한도 풀라’는 게 어머니의 뜻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검정고시를 보라고 했지만,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떳떳하게 졸업하고 싶어 재취학을 결심했다”며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는 만큼 가장 먼저 등교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따르겠다”고 말했다.
불교 경전을 읽는 틈틈이 국어와 영어, 수학, 국사를 독학해 왔다는 그는 “급우들과 세대 차이가 있어 조금 걱정되지만, 중생을 일깨우듯 인생의 선배로서 잘 이끌어주겠다”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만큼 앞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도 진학해 못다 한 배움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순애 교감은 “이제라도 공부하겠다는 진지한 자세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귀감이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