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철에 정치 무관심 겹쳐 유권자들 외면
“저 양반들 뭐여. 왜 남의 잔칫날에 어깨띠하고 몰려다니면서 명함을 나눠주남”17일 오전 동문 체육대회가 열리는 충북 청원군 가덕면의 한 중학교 운동장.
오는 27일 재선거로 치러지는 청원군의원 가선거구의 후보들이 이곳에 몰려들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선거가 열리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 후보의 명함을 받아든 주민이 “작년에 선거한 것 같은데 무슨 선거를 또 해요”라고 묻자 후보는 “27일 군의원 재선거가 열립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한 표 부탁합니다”라며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선거이야기는 끝이 났다.
후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기저기 명함들만 어지럽게 버려졌을 뿐 누구도 선거에 관심을 두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청원군 가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들은 영농철인 탓에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다 정치 무관심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뜨지 않아 선거운동에 애를 먹고 있다.
후보들은 5일장, 동문 체육대회, 마을회관 등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논.밭까지 도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지만, 주민을 만나면 자신을 홍보하는 것보다 선거가 열린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더 시간을 쓰는 형편이다.
한 후보는 “선거분위기가 나지 않아 연고지가 아닌 면(面)에서는 이름을 알리기도 어렵다”며 “유권자를 찾아 논.밭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영농철이어서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어떻게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초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대부분 지역이 비슷하다.
전북 남원시의원 선거에서도 5명의 후보가 오전부터 교회 앞에서 예배에 나온 신도 등을 대상으로 득표전에 열을 올리고 시내를 돌며 한 표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한나라당과 무소속 등 2명의 후보가 등록한 경북 예천군의원 라선거구에서는 지난달 한 예비후보자가 주민 20여명에게 400여만원 상당의 화장품을 돌리다 구속되면서 정치 혐오증까지 커지고 있다.
주민 김모(45.농업)씨는 “매년 이런, 저런 선거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선거 무관심을 넘어 피로를 느끼는 것 같다”며 “언제나 뒤탈없는 선거를 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같이 기초의원 선거에 유권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선관위는 투표율 높이기에 비상이 걸렸다.
시의원 보궐선거를 하는 충북 제천시 선관위는 차량을 이용해 홍보방송에 나서고 5일 장, 벚꽃축제장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지인.가족에게 엽서 보내기 운동 등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냉랭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단체들도 특별한 정치 쟁점이 없다는 이유로 기초의원 선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탓에 선거 때마다 펼치던 공명선거운동이나 공약검증 운동 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기초의원 재.보궐선거가 후보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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