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무현 서거…YS는 노환으로 투병중
직선제 개헌의 기폭제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6·10 민주항쟁’이 10일로 26돌을 맞는다.26년전 서울시청 앞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진 민주화의 함성을 추동한 두 축은 재야 정치세력이 주도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와 학생운동권 중심의 이른바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그룹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상당수는 정치적 부침을 겪으며 재기에 나서는 등 훌쩍 흘러가버린 26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함께 결성, 7인의 국본 상임공동대표단 멤버로 활동하며 ‘투사들의 버팀목’이 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세상을 떴다. 역시 국본 상임공동대표단에 참여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폐렴 악화로 지난 4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현재는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 중이다.
2009년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와중에 세상을 등진 노무현 전 대통령도 6·10 민주항쟁 당시 부산 국본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약했다.
부산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친노(친노무현)의 구심점으로 부상, 지난 대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다.
대선 패배 후 책임론 등을 의식, 한동안 외부활동을 자제했으나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전면등장과 맞물려 최근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국본 상황실장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도 친노의 좌장으로, 지난해 6·9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며 당의 주도세력으로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최근에는 ‘로키(low-key)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시 ‘군사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거리투쟁의 선봉에 섰던 ‘486’ 인사들은 1990년대말∼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화려하게 제도 정치권에 진출했다.
이후 민주당의 주도세력으로 승승장구하다 지난 대선과 5·4 전당대회를 거치며 친노·범주류의 퇴조와 맞물려 변방으로 밀려나 혹독한 휴지기를 보내고 있다.
486의 부침은 정치적 독립 선언에도 불구, ‘운동권 패권주의’, ‘하청정치’라는 당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과 무관치 않다. 486인 김영춘 전 의원도 지난달말 “줄서기에 급급해 약자를 대변하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참회문을 쓰기도 했다.
당내 대표적 ‘6·10 세대’ 인사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단 출신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 의원 등이다.
이들은 18대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했으나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재기에 성공, 전대를 통해 지도부에 입성하거나 한명숙·이해찬 대표 시절 또는 대선 과정에서 핵심 요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다 현재는 외곽에서 절치부심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전대협 스타군단’으로 꼽히는 임종석 전 의원은 정치자금 불법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2심에서 무죄를 받고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전남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강기정 의원은 5·4 전대에서 당권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반성과 성찰을 내세워 ‘정중동’을 이어온 486 그룹은 당내 혁신그룹으로의 확대 재편을 통해 조심스레 활로찾기에 나서려는 분위기이다. 6월 중 준비 모임을 갖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단순히 486의 이름으로 다시 뭉치기 보다는 가치와 노선을 중심으로 ‘혁신블록’을 구축, 야권 지형 재편의 한가운데에 선 당의 진로 모색 과정에서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우상호 의원은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6월 항쟁의 핵심인 희생·헌신, 국민 참여가 자기반성과 새출발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오영식 의원도 “처절한 반성문을 토대로 특정집단, 친소 관계 중심이 아니라 가치와 시대정신의 지향을 갖고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 잠재적 차기주자군인 486 광역단체장들의 내년 재선 성공 여부도 486의 부활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에서는 5선의 이재오 의원이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옛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실세로서 자리매김했으나,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류로 부상한 19대 국회에선 ‘저공비행’ 중이다.
친박계 원조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도 상도동계 핵심으로 6·10 민주항쟁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 4·24 재·보선 당시 영도에서 압승을 거두며 원내에 재진출, 화려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차기 유력 당권주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여권내 ‘6·10 세대’들은 대부분 원외에 머물고 있다. 18대 총선때 친박연대를 주도했던 이규택 전 의원, 재선 의원 출신인 박계동 전 의원 등도 국본 멤버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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