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

[공연]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El Sistema)

입력 2010-09-19 00:00
수정 2010-09-19 15:0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한국의 ‘구스타보 두다멜’을 기다리며

지난 2008년 12월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베네수엘라가 낳은 천재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하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청년오케스트라단>(이하 청년 오케스트라단)의 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 참가한 관객들은 28세의 나이에 LA 필 상임지휘자로 내정된 두다멜의 천재성과 독창성, 단원 대부분이 ‘엘 시스테마’라는 조직적인 운동을 통해 훈련된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출신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연주회가 끝난 후 단원들이 입고 있던 베네수엘라 국기 문양이 새겨진 단복을 관객석으로 던져 분위기를 한층 달구었고, 두다멜이 객석으로 걸어 나와 곽승 대구시향 상임지휘자를 끌어안고 감사를 표시하는 장면은 모두를 감동시켰다(곽승 지휘자는 약 20년 전부터 매년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여, <청년오케스트라단>을 지휘하고, 동 단원은 물론 여타 ‘엘 시스테마’를 통하여 음악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을 지도해 왔다). <청년오케스트라단>의 한국 공연을 통해 ‘엘 시스테마’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운동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엘 시스테마’의 한국화 방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이미지 확대
인생을 바꾸게 하는 음악운동, ‘엘 시스테마’


‘엘 시스테마’는 “오케스트라가 이상적인 사회의 표본이며, 오케스트라 활동에의 적응이 빠르면 빠를수록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주게 된다”라는 아브레우 박사의 이상적인 꿈을 현실화시킨 운동으로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 클래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범죄에 빠지기 쉬운 빈민층 아이들을 가르치고 재활하는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베네수엘라의 어린이들은 2~3세부터 시작, 5세부터 악기 다루는 법을, 7세쯤에 자신에 맞는 악기를 선정 배워 나간다. 이들은 하루 3~4시간씩 교육에 참여하는데, 한 단계 앞서가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치고 집단교육 방식을 원칙으로 하며, 그룹별·개인별 교육도 병행한다. 이러한 교육방식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조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성을 기르고 음악적인 재질을 높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은 건전한 가족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베네수엘라의 빈곤층은 경제적 이유로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이 낮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들의 일을 돕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엘 시스테마’ 조직원들은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일이 각 가정을 방문한다. 그리고 ‘엘 시스테마’에서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운동의 중요성을 부모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돕는다. 이렇게 생업에 쫓겨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던 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이 싹트게 되어 한마음으로 뭉치게 되는 계기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요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청소년 범죄 등 상대적으로 범죄에 빠지기 쉬운 빈민층 아이들을 음악을 통해 가르치고 재활하여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 많은 아이들을 구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확대
‘엘 시스테마’는 나이, 신분, 경제사정에 관계없이 베네수엘라 어린이라면 국가 지원으로 누구나 수업료를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으며, 악기도 무료로 대여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조직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된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아브레우 박사가 오케스트라단을 처음으로 결성한 시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를 “처음 11명이 모여 지하 주차장에서 시작하였고, 연습장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고 회고한다.

이 오케스트라단이 비상한 관심을 받기 시작 한 건 1977년 스코틀랜드의 아베르딘에서 개최된 국제경연에서 입상한 이후부터이다. 그 후 국제적 명성이 더해 가면서 사정은 더욱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정부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제대로 평가하고 적극적 지원을 보냈다. 특히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엘 시스테마’가 자신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회개혁 운동과 괘를 같이한다며 2007년 9월 이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미시온 무시카’(정부의 음악지원 프로그램)를 발족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전국 180여 개의 지부를 운영, 35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고, 150여 개의 청년오케스트라단과 70여 개의 유년오케스트라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
하지만 ‘엘 시스테마’가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한 데는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브레우 박사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 지원을 얻는 데도 최선을 다하였다. 필자가 베네수엘라 대사 부임 당시 그는 내게 “한국이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좋으니 악기를 지원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청년오케스트라단>의 한·중·일 순회연주를 성사시키기 위한 가능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런 아브레우 박사의 국제적 지원 획득 노력의 대표적 성과물이 ‘미주개발은행’(IDB)의 지원이다. 이 은행은 ‘엘 시스테마’의 사회적 기여 측면을 평가하여 카라카스에 본부 건물을 지어 주었고, 주요 지방도시에 센터를 짓는 데도 지원해 주기로 결정하였다.

‘엘 시스테마’를 대표하는 <청년오케스트라단>은 매년 다른 대륙에서의 순회 연주회를 하면서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문화대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 단체에서 음악을 공부한 연주자들 역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두다멜은 말할 것도 없고, 베르린 필에서 더블베이스 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에딕슨 루이스’도 배출해 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악기를 익혀 나감으로써 내면의 순수한 음악성이 그대로 밖으로 표출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계의 저명한 음악계 인사들은 “클래식 음악의 미래가 베네수엘라에 있다”라며 이 단체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제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사회운동이자 문화운동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미지 확대
한국과 ‘엘 시스네마’와의 관계


아브레우 박사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에 대한 강한 인상을 가지게 된다. 필자는 ‘엘 시스테마’ 활동이 베네수엘라를 대표하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단체와의 관계 증진이 양국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필자는 우리 정부 차원에서 이 단체에 대하여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나갔다. 아브레우 박사는 악기를 지원 받기를 희망하였으나 악기보다는 우리의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부와의 협의를 해 나갔다. 마침 ‘미주개발은행’(IDB)이 카라카스에 ‘엘 시스테마’의 본부 건물을 건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 사무실이 가동될 경우에 필요한 사무장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 악기 지원보다는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마침내 우리 정부의 승인을 얻어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컴퓨터 약 100대씩 총 200대 이상을 지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우리의 지원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브레우 박사는 우리 정부가 적기에 이러한 사무 장비를 지원해 준 데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면서, ‘한국의 날’을 정하여 오케스트라단의 연주회를 개최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2006년 12월, <청년오케스트라단>이 한국을 위한 연주회를 열었다. 이 행사는 마침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곽승 지휘자의 지휘로 열렸고, 앙코르 곡으로 <아리랑>이 연주되어 현지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강한 인상을 주게 되었고 교민들에게는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를 더 높여 주게 되었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했던 두다멜 지휘의 <청년오케스트라단>의 연주회가 ‘예술의전당’과 ‘성남 아트홀’에서 개최, 아브레우 박사의 숭고한 이상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시작된 음악운동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미지 확대
‘엘 시스테마’의 한국화 방안


첫째, 우리나라에서도 베네수엘라에서처럼 음악계 또는 다양한 사회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베네수엘라에서 ‘엘 시스테마’ 운동을 시작했던 아브레우 박사는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자신도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공부한 아마추어 음악인이다. 또한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하원의원, 대학교수, 문화장관 등을 역임한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의 한사람이다. 이러한 음악적 식견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그가 뛰어난 통찰력과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이 운동을 시작하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양하게 되었다. 두다멜도 이 운동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제 이 운동은 아브레우 박사를 넘어 세계적 지휘자로 부상한 두다멜이 이 운동의 지속적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운동은 양인의 노력으로 베네수엘라를 넘어 세계 속에 굳게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요즘 음악계 지도자를 중심으로 ‘엘 시스테마’ 운동에 공감하면서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음악 교육 모델이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사회로부터 소외된 어린이들이나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집단 생활하는 복지기관 등에서 이러한 교육 운동을 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이들은 숙식을 같이 하기 때문에 용이한 측면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들 중에는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므로 장래 우리 음악을 이끌고 나갈 재목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이 성과를 거두게 되면, 점차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 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둘째, ‘엘 시스테마’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뉴 잉글랜드 음악학교’(New England Conservatory)가 ‘엘 시스테마-미국’(El Sistema USA)을 만들어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운동을 미국 내에 확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엘시스테마-미국’은 음악인과 음악교육자들로 하여금 대학원 과정으로 1년간 무료로 베네수엘라에서 음악공부를 하도록 함으로써 동 과정 수료 후에는 그들의 지역사회로 돌아가 ‘엘 시스테마’ 모델을 전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협력은 시범사업이므로 앞으로 협력 모델을 더욱 다양화 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아브레우와 두다멜은 서울 연주회가 끝난 후 ‘엘 시스테마’운동을 한국에도 확산시키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엘 시스테마’와 이러한 유형의 협력관계를 맺고자 하는 우리의 음악 교육기관이나 단체가 ‘엘 시스테마’와 양해각서 등을 체결하여 양측이 협력모델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구스타보 두다멜을 꿈꾸며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에서 대사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운동이자 사회운동인 ‘엘 시스테마’를 소개하였다. ‘엘 시스테마’는 비단 클래식뿐만 아니라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전개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분야의 교육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의 자녀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엘 시스테마’와 같은 운동이 확산된다면 이러한 인식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일들을 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앞으로는 그런 분들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또 아브레우 박사와 같은 분도 나오고, 이를 통해 두다멜과 같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글_ 신숭철 경남국제관계자문대사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과자의 배달업계 취업제한 시행령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강력범죄자의 배달원 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가운데 강도 전과가 있는 한 배달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속죄하며 살고 있는데 취업까지 제한 시키는 이런 시행령은 과한 ‘낙인’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전과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이런 시행령은 과하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 보아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