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아들, 뺏은 아들, 엄마 그리고 우리

뺏긴 아들, 뺏은 아들, 엄마 그리고 우리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1-02-18 20:14
수정 2021-02-1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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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정해연 지음/시공사/288쪽/1만 3800원

자녀 실종 충격으로 입원한 주인공
목격한 아이 몰래 데려와 수색 나서
상처 입은 가족들, 모성애 통해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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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사라진 여덟 살 딸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김용복씨가 딸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힌 뒤에야 김씨는 기다리던 딸이 희생된 것을 알게 됐다.  서울신문 DB
1989년 사라진 여덟 살 딸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김용복씨가 딸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힌 뒤에야 김씨는 기다리던 딸이 희생된 것을 알게 됐다.
서울신문 DB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실종 아동은 1만 9146명에 달한다. 이 중 105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 아동 가족의 70%가량은 가족 해체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올 정도로 가족의 아픔은 어느 무엇보다 잔인하다. 아이를 잃어버린 이들에겐 안타까움이 일고, 아이를 유괴한 이들에겐 대부분 여지없이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만약 유괴된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남의 아이를 납치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감정을 드러내게 될까.

스릴러 소설 ‘유괴의 날’(2019)에서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의 연대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물었던 정해연 작가가 이번엔 신간 ‘구원의 날’로 우리가 이런 가족의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질타한다. 작가는 실종 아동 부모의 시선을 통해 상실에 대한 치유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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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실종 아동의 사진을 담은 ‘호프테이프’로 택배를 포장하는 모습. 경찰청이 지난해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우정사업본부·한진택배 등과 함께 진행했다. 경찰청 제공
장기 실종 아동의 사진을 담은 ‘호프테이프’로 택배를 포장하는 모습. 경찰청이 지난해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우정사업본부·한진택배 등과 함께 진행했다.
경찰청 제공
소설 속 주인공 예원은 3년 전 불꽃놀이 축제 인파 속에서 여섯 살 아들 선우를 잃어버린다.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조절장애에 빠진 예원은 결국 요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선우와 똑같이 동요를 개사해 부르던 아이 로운을 만나자 충동적으로 로운을 데리고 나온다. 로운이 선우를 예전에 한 기도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원과 남편 선준은 선우를 찾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 유괴범 낙인이 찍히는 것도 감수한다. 문제의 기도원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폐쇄적 사이비 종교 단체와의 대립, 긴장감은 스릴러 소설 특유의 재미다.

작가는 예원 부부의 일상을 통해 아이를 잃어버리고 난 후 상호 불신과 균열로 파탄 난 가정과 이중적 심리를 여과 없이 보여 줬다. 예원은 “만약 그때 내가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죄책감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선준은 경찰이 선우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아내에겐 이를 숨긴다. 유전자 검사로 시신이 선우가 아니라고 드러났지만, 앞으로 ‘희망 고문’을 계속할 것을 생각하면 기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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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구원의 날
독자는 로운을 납치한 예원 부부에게 더욱 감정이 이입될 수도 있다. 로운은 엄마 주희의 방치로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인 데다 예원을 실제 엄마처럼 따르기 때문이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죄책감을 느끼는 예원과 로운을 방치하고 시설에 보낸 무책임한 주희, 이를 통해 작가는 육아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없는 우리 사회를 고발한다.

하지만 “엄마란 존재는 결국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270쪽)에서 보듯, 모성애는 여전히 희망이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용서를 통해 서로 구원한다. 가족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용서하고 보듬을 수 있는 것 역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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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 시공사 제공
정해연 작가.
시공사 제공
작가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손을 잡고, 놓고, 놓친다. 하지만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있다. 그걸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잡은 손을 놓아 버릴 때도 있지만, 진심과 용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가슴속엔 모처럼 훈기가 가득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2-1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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