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그린 1985년 남영동 고문

만화로 그린 1985년 남영동 고문

입력 2014-07-05 00:00
수정 2014-07-0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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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시간/박건웅 지음/보리/564쪽/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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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한테 처참한 고문을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떠나는 지금도 대놓고 욕 한마디 할 수 없고 그런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말이다.”

1985년 9월 25일, 22일 만에 서울 남영동 고문실에서 햇빛 속으로 나온 그는 그때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해진 온갖 고문은 민주 투사였던 그를 무기력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 ‘짐승 같은 시간’은 이후에도 후유증을 남기면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가 겪은 처참한 일들은 다시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됐다.

역사의식이 강렬한 작품을 그려온 박건웅 작가는 ‘짐승의 시간’에서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남영동에서 겪은 고문의 실상을 살려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며 조사받은 일이다. 그해 12월 법원에서 대공분실의 내막을 고발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이듬해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형을 확정받았다. 위법한 수사였다는 게 인정된 것은 지난 5월이다.

그림체는 투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처절한 현장을 말끔하게 그려냈다면 슬픔과 울화가 북받쳐 중간에 덮어 버릴지도 모른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진짜 의미를 접하지 못한 채. 저자는 고문을 가한 이들도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인 점을 드러내면서 그들이 제도 안에서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에둘러 보여 준다. 한 인간의 존엄, 그것을 짓밟는 권력 등에 대한 사유를 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지금이 과연 다른 시대일까 하는 질문에 다다른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2014-07-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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