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硏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 정조 시대 ‘선잠단’ 등 1년 347건 거행
조선 시대 왕실 제사의 대상은 계속 늘어났다. 왕조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왕의 수가 늘고, 종묘의 신실이 늘어나면서 왕릉의 수도 급증했다. 정조 때에 이르면 종묘에서 지내는 대사(大祀)는 조선 전기 7실에서 14실로 늘었고, 왕릉은 42기에 이르렀다. 정조 시대를 기준으로 조선 왕실에서 1년간 거행하는 제사 수는 347건에 달했다. 하루 0.95번꼴로 제사를 치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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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삭망전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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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실도, 관리들도 너무 많은 제사를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나온다. 왕 역시 하루 0.95번꼴로 제사를 지내는 건 힘들지 않았을까.
국가 제향이 늘어나면 이를 수행할 제관이 더 많이 필요해지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예를 들어 가장 큰 제삿날인 한식에는 120여명의 제관을 일시에 파견해야 했다.
그러자 왕실에서는 점차 직무가 없는 관리,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든 관리, 문신뿐 아니라 무신까지 제사에 차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사를 피해 가려는 관리들이 늘면서 관료들에게서는 “제향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 왕실에서는 “더욱 공경히 치러야 한다”는 동상이몽식 이견을 갖게 됐다.
저자인 이욱 한중연 국학자료연구원은 “조선 시대 국가 제사는 유교 예법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 권력을 가진 왕실로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고, 하나의 문화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조대 종묘 개혁을 시행한 것이나 고종대 제관 차출 방식을 바꾼 것은 공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제향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01-2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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