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 확장 정책으로 도시 편입…골칫거리 vs 보호대상 논란도
때때로 사람까지 위협하는 골칫거리일까, 아니면 콘크리트 일색인 황량한 도시가 야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몇 안 되는 증거일까.수십 년에 걸쳐 영국 런던 도심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 잡으며 어엿한 ‘런더너’(런던 시민)가 된 붉은 여우에 대한 얘기다.
AFP통신은 28일(현지시각) 런던에만 1만 마리의 ‘길 여우’가 ‘살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짚었다.
브리스톨대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도시지역에 사는 여우는 3만3천마리에 이르며 이 가운데 3분의1 안팎이 런던에 사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골에는 25만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됐다.
거리를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여우의 모습은 이미 런던에서 꽤 흔한 풍경이 됐다.
최근 관련 설문조사에서 런던 시민의 70%가량이 ‘지난 일주일 동안 여우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우는 1930년대 런던 시가지 확장과 함께 도시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표적 동물보호단체인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의 칼리 라이딩스는 “여우는 잡식성인데다 타고난 기회주의자여서 적응력이 뛰어나다. 도시나 마을에서 여우가 발견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런던에 사는 여우의 개체수가 늘면서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밤중에 섬뜩한 울음소리를 내 잠을 설치게 하거나 먹을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쓰레기통을 헤집고 뒤엎어놓는 일은 예사이고, 영·유아가 여우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려온다.
2010년에는 런던 동부 주택 침실에 여우가 들어와 아기 침대에서 자던 생후 9개월 쌍둥이 여아를 공격한 사례가 보고됐고, 올해 2월에도 집안에서 1개월 남아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지난 6월 여우 개체수 조절 문제와 관련해 법으로 금지된 ‘여우사냥’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존슨 시장은 당시 “(여우사냥을 지지하면) 인기는 어마어마하게 떨어지겠지만 상관하지 않는다”며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여우에게 공격당해 총을 들고 쫓아낸 일화를 소개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대다수 런던 시민이 여우와 큰 문제 없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티븐 해리스 브리스톨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영국은 전세계에서 여우 개체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데도 관련 문제는 놀랄만큼 적다. 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기집 정원에서 여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널4와 브리스톨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여우를 좋아한다’고 답했고 런던 시민의 10%는 정기적으로 여우에게 먹이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우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보고된 사례도 과장된 경우가 많다고 주장도 있다.
영국 야생여우 보호단체인 ‘폭스 프로젝트’의 트레버 윌리엄스 대표는 “최근 11년간 여우가 영·유아를 공격한 사례 3건이 알려졌는데 이중 1건은 해당 가족이 기르던 애완견의 짓이었고 다른 하나도 개와 관련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머지 1건은 진술에 모순이 많아 신뢰할만하지 않다”며 “여우의 공격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영국에서 매년 25만명이 자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에 물리는 것에 비하면 발생빈도는 극히 낮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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