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녁길/정영주 · 화물자동차/김기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녁길/정영주 · 화물자동차/김기림

입력 2020-01-16 17:08
수정 2020-01-17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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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길 / 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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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길 / 정영주
저녁길 / 정영주 91×65㎝,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2015
서양화가, 한지를 이용해 달동네 풍경 묘사
91×65㎝,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2015

서양화가, 한지를 이용해 달동네 풍경 묘사

화물자동차 / 김기림

작은 등불을 달고 굴러가는 자동차의 작은 등불을 믿는 충실한 행복을 배우고 싶다

만약에 내가 길거리에 쓰러진 깨어진 자동차라면 나는 나의 노트에 장래라는 페이지를 벌써 지워버렸을 텐데

대체 자정이 넘었는데 이 미운 시를 쓰노라고 베개 가슴을 고인 동물은 하느님의 눈동자에 어떻게 가엾은 모양으로 비칠까? 화물자동차보다 이쁘지 못한 사족수四足獸

차라리 화물 자동차라면 꿈들의 파편을 거둬 심고 저 먼 항구로 밤을 피하여 가기나 할 터인데

나무는 한 자리에 서서 생애를 마친다. 겨울엔 흰 눈을 머리에 이고 봄이면 꽃을 피운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과 그늘을 드리운다. 나뭇잎 속에서 밀화부리가 노래할 때 내 마음은 새로운 시의 꿈으로 뛴다. 가을이 되면 색색의 단풍이 물든다. 한 여행자가 걸음을 멈추고 배낭 속에서 피리를 꺼낸다. 시오리 떨어진 역에서 국경으로 가는 기차가 달려온다. 나무처럼 살았으면 싶다. 김기림에게 화물 자동차는 나무다. 평생 누군가의 짐을 나른다. 땀도 흘리지 않고 경사진 언덕을 올라갈 때 가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들에서 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을 화물칸에 태워도 준다. 하느님이 보기에 미운 시를 쓰느라 베개로 가슴을 고인 동물보다 화물자동차가 백배나 예쁠 것이다.

곽재구 시인
2020-01-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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