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더듬다/허은실

입력 2017-04-14 17:58
수정 2017-04-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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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다/허은실



사타구니께가 간지럽다

죽은 형제 옆에서

풀피리처럼 울던 아기 고양이

잠결에 밑을 파고든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더니

콧망울 바싹 붙이고

허벅지 안쪽을 깨문다

나는 아픈 것을 참아본다

익숙한 것이 아닌 줄을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다

어둠 쪽을 바라본다

잠이 들어서도

입술을 달싹인다

자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들의 꿈은 쓴가

더듬는 것들의 갈증 때문에

벽을 흐르는 물소리

그림자 밖에서 꼬르륵 거리고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어미와 형제를 잃고 애닯게 우는 어린 고양이를 집에 들였다. 낯선 기척에 깨보니 어린 것이 사타구니께에 콧망울을 붙이고 잔다. 이 어린 고양이가 허벅지를 깨문 것은 필시 잠결에 제 어미 품인 줄 착각한 탓이다. 오갈 데 없는 타자를 품고 잠든 이 찰나야말로 생명의 진풍경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한평생을 보내는 존재가 아닌가.

장석주 시인
2017-04-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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