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포폰(大砲phone)/박대출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포폰(大砲phone)/박대출 논설위원

입력 2010-11-04 00:00
수정 2010-11-0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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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차, 대포광고란 게 있다. 원래는 자동차업계나 광고업계 용어다. 자동차 업계는 매달 판매 실적을 집계한다. 시장 점유율 경쟁은 과열되기 일쑤다. 가끔 대포차 수법이 동원된다. 팔리지 않은 차량을 팔린 것처럼 위장하는 편법이다. 대포광고도 비슷하다. 스폰서의 요청이 없는데도 내보내는 광고다. 이 경우의 대포는 무기 대포(大砲)와 다른 의미다. 허풍이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란 뜻이다. 그런 사람을 빗대는 말도 된다.

무기 아닌 대포는 진화되고 있다. 허풍, 편법에서 가짜, 불법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대포차, 대포통장, 대포폰은 ‘대포 3종 세트’라고 불린다. 이때 대포차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해 놓고 운행하는 차량이다. 대포통장, 대포폰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대포들은 관련 업계나 경찰, 범죄인들 사이에서 쓰이던 합성 은어(隱語)였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영역이 확장됐다. 대포폰은 2003년 국립국어원 신어(新語) 자료집에 등록됐다. 대포차는 그 이듬해 훈민정음 국어사전에 올랐다. 은어에서 정식 단어로 넘어간 것이다.

‘대포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인터넷 아이디를 도용한 대포아이디, 다른 사람 휴대전화 번호로 스팸문자를 보내는 대포문자 등도 등장했다. 대포 카드, 대포 인터넷 전화 등도 있다. 이런 대포들은 명의를 도용하거나 차용한다. 정상적으로 쓰일 리가 없다. 범죄의 필수 품목이 돼 버렸다. 보이스피싱, 인터넷 쇼핑 사기, 뺑소니, 허위 납치나 폭로 협박, 세금 포탈 등. 그런데도 수백개, 수천개 인터넷 사이트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청와대의 대포폰 제공 논란이 거세다. 청와대 측이 대포폰을 개설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건네줬다는 것이다. “5개다, 1개다.” “의도적 은폐다, 아니다.” 등 공방이 오간다. 야당은 대대적인 사정 정국에 맞설 호재로 삼을 태세다. 민주당은 특검 공세로 이어가고 있다. 논란이 조기에 가라앉기는 쉽지 않을 분위기다. 어쨌든 권력 심장부인 청와대가 이런 논란의 진원지가 됐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자체가 씁쓸하다.

한때 이런 썰렁개그가 유행했다. ‘북한 김정일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집집마다 핵(核)가족, 골목마다 대포집, 거리엔 총알택시, 술집엔 폭탄주’. ‘이유 2’엔 이런 게 추가되지 않을까. ‘주차장엔 대포차, 주머니엔 대포폰, 금고에는 대포통장’. 이쯤 되면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로 맞설 수 있을까.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2010-11-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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