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분양방식 놓고 대형·중소 건설사 ‘대립’

공공택지 분양방식 놓고 대형·중소 건설사 ‘대립’

입력 2014-05-15 00:00
수정 2014-05-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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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협력업체 공공택지 청약 동원, 청약 경쟁 치솟아대형업체 제도개선 건의에 중소업체 반발…국토부 “자정 안되면 제도개선”

지난달 2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제주 서귀포 강정 택지지구.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가 들어설 4블록 택지 청약에 무려 228개 주택업체가 몰리며 2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LH가 올해 분양한 공공주택용지 경쟁률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지방에서 중대형 아파트가 지어질 공공주택용지의 청약 경쟁률이 200대 1을 넘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필지는 ‘청약전쟁’을 거쳐 중소건설사인 유승건설의 차지가 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월에 분양된 구리 갈매보금자리주택지구 C1블록에는 무려 120개사가 신청했고, 같은 달 공급한 광주 수완지구 C435블록은 127개사가 접수해 역시 경쟁률이 각각 100대 1을 넘었다. 이들 택지는 시행법인인 디에스네트웍스와 이에스엔지니어링건축사무소가 각각 당첨자로 결정됐다.

LH 관계자는 “자세히 확인해볼 순 없지만 지방 택지의 청약에서 각기 다른 100개 이상의 건설사가 청약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일부 업체가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회사 등 관계사를 동원한 무더기 청약을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당첨 확률 높이려 협력업체까지 동원…경쟁률 부추겨

아파트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건설사를 중심으로 자회사·계열사 등을 동원한 택지 청약이 크게 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공택지에서 주택사업을 많이 하는 중견 건설사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계열사가 적게는 10개, 많게는 30여개에 이른다.

한 중견 건설사의 관계자는 “수도권과 지방에서 유망 공동주택용지가 나올 경우 자회사 등 관계 법인이 일제히 동원돼 청약신청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공공택지 당첨회사가 가려질 때마다 어느 회사와 관련된 업체인지 ‘선수들’ 끼리는 다 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공동주택용지는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300가구 이상 주택건설 실적과 시공능력이 있는 업체에 우선 공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어 공급 실적과 관계없이 주택사업 등록업자면 누구든 청약이 가능하다.

최종 분양 계약자는 ‘추첨(뽑기)’으로 가리기 때문에 자회사 등을 동원해 최대한 많이 신청할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 자회사 가운데는 주택건설 실적이 없는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도 포함돼 있다.

이런 ‘껍데기’ 회사가 당첨되면 시행사가 되고, 시공 실적이 있는 모회사가 공사를 맡아 사업을 추진한다.

한국주택협회 조사에 따르면 중견 건설업체인 A사의 경우 2012년부터 올해 4월까지 자사의 시행법인(자회사)을 동원해 택지를 분양받아 아파트를 공급한 공공택지 사업지가 세종시 12개 블록을 포함, 총 15개에 이른다.

역시 중견 건설사인 B사도 7∼8개의 시행법인(자회사)이 세종시와 전주·완주 혁신도시 등 12개 사업장에서 당첨돼 모회사인 B사가 공사를 맡아 사업을 진행했다.

일부 건설사들은 자회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청약에 동원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협력업체가 당첨이 되면 택지 전매 방식으로 명의를 넘겨받아 사업을 한다.

한 중견 건설사의 관계자는 “자회사·계열사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협력업체를 시켜 청약을 하다보니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을 수밖에 없다”며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한 ‘들러리’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택지를 공급받을 목적으로 신청한 업체는 많아야 20∼30여개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대형업체 “시장 질서 어지럽혀” vs 중소업체 “시장원리 어긋나지 않아”

이처럼 공공택지 아파트 분양을 중소 건설사들이 독점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형 건설사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대형 업체의 경우 중소업체와 달리 계열사 편입 등의 문제로 자회사 설립이 어려워 동원 가능한 업체 수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당첨확률이 떨어진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대형 주택업체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중소 건설사들이 막대한 수의 자회사를 동원해 택지 청약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자금력과 시공능력이 부족한 중소업체가 공공택지를 독식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공공택지는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사업진행 속도가 빨라 요즘처럼 주택시장이 불확실할 때 가장 안전한 사업지”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대형업체와 중소업체 상품을 비교해 보고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 문제를 연내 개선하기 위해 최근 청와대와 국회, 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 전방위에 걸쳐 제도개선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중소 건설사들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중소 주택업체들이 모인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와 달리 중소업체는 주택건설이 사업의 전부”라며 “대형 업체가 주택사업까지 독식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J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공사 경험이 없는 시행 법인들도 각각 독립된 회사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청약을 하는 것”이라며 “계열사라고 해서 입찰 참여 제한을 둔다는 것은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지난달 말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담당자가 모인 자리에서 시장 질서가 바로잡힐 수 있도록 업계 스스로의 자정을 촉구하고 제도개선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반대로 또다른 규제를 만들 수 있어 고심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지 청약을 1개 회사로 제한하는 것 등은 새로운 진입장벽을 만들고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수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업체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시행·시공능력이 없는 회사를 동원해 무더기 청약을 하지 못하도록 토지 전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제위기 등으로 택지공급과 관련한 규제가 많이 풀려 있다”며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택지공급제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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