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피겨여왕’ 김연아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입력 2013-03-17 00:00
업데이트 2013-03-1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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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여왕’ 김연아(23)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향해 중요한 디딤돌을 놓았다.

김연아는 17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끝난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피겨 여자 싱글에서 총점 218.31점으로 정상에 올랐다.

2009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4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며 ‘피겨 여왕의 귀환’을 알린 그는 이제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1984~1988년) 이후 26년 만의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할 예정이다.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한 시절부터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가 은반에서 걸어온 길을 재조명해 본다.

◇7세 유망주에서 피겨 여왕으로 = 7살 때 피겨를 시작한 김연아는 타고난 점프력과 리듬감을 앞세워 ‘피겨 신동’으로 불리며 중·고교 선배들을 따돌리고 국내 대회 우승을 독차지했다.

12살이던 초등학교 시절 5종(러츠·플립·살코우·토루프·루프)의 트리플(3회전) 점프를 모두 완성한 김연아는 단숨에 세계무대에서 통할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2004년 세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준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김연아는 1년 뒤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 준우승과 주니어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피겨를 이끌어갈 차세대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트리글라프 트로피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2004-2005 시즌부터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2005년 3월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의 영광을 차지했다.

국내에 피겨가 도입된 지 111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 소식은 빙상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피겨의 불모지로만 여겨졌던 한국에 ‘피겨 요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06-2007 시즌 마침내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김연아는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연이어 나선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자신의 첫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선 김연아는 허리 통증에 시달렸으나 ‘진통제 투혼’으로 우승을 일궈낼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보였다.

2008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관절 통증으로 끝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서 2년 연속 동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2008-2009 시즌 부상 없이 최고의 몸 상태로 시즌을 맞이한 김연아는 그랑프리 2개 대회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에 이어 2009년 4대륙 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까지 휩쓸었다.

특히 김연아의 생애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총점 207.71)은 한국 피겨의 역사를 새로 써 내린 위대한 업적이었다.

김연아는 2002-2003 시즌부터 ISU가 시범 도입한 신채점방식(뉴저지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여자 싱글 선수가 됐다.

상승세를 살린 김연아는 올림픽을 앞두고 시작된 2009년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고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정상에 올라 절정의 기량을 자랑했다.

마침내 생애 처음 나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모두 역대 최고점 기록을 경신하며 총점 228.56점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 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에 이어 올림픽까지 모두 우승을 맛보면서 여자 싱글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로 피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더불어 김연아가 작성한 쇼트프로그램 최고점 78.50점과 프리스케이팅 최고점 150.06점, 총점 228.56점은 쉽게 깨지지 않을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10년 우승 당시 현지 언론인 밴쿠버 선은 “김연아의 기록을 깰 사람은 오직 김연아뿐이다”라고 보도했다.

◇방황 끝내고 돌아온 국제무대…결과는 우승 =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후 허탈감에 시달렸다.

김연아 자신도 “오래 기다렸던 목표를 성취한 뒤 공허함을 느꼈다. 운동하기 싫을 때가 잦았고 운동을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서 방황했다”고 되돌아볼 정도로 그는 좀처럼 의욕을 내지 못했다.

올림픽 직후 열린 이탈리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무른 김연아는 2010-2011 시즌 ISU 그랑프리 시리즈를 통째로 쉬었다.

이후에도 김연아는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준우승한 이후 더는 대회에 나서지 않았다.

다음 시즌인 2011-2012 시즌에도 진로를 결정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했고 대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 등 선수 외적인 활동에 치중하면서 은퇴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맥주 광고에 출연했다가 청소년의 음주문화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급기야 자신의 교생실습을 ‘쇼’라고 비방한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김연아의 향후 행로가 ‘오리무중’으로 빠질수록 은퇴와 현역 연장의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목소리는 커졌다.

2년 넘게 거취를 고민해온 김연아는 결국 지난해 7월 빙판 복귀를 선언하고 올림픽 타이틀 방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아울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내놓았다.

김연아는 지난 시즌 어느 대회에도 출전하지 않아 소치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려면 최소 기술점수(쇼트 28.00점, 프리 48.00점)를 확보해야 했다.

문턱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걱정도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지난해 말 NRW 트로피에서 최소 기술점수를 채운 것뿐만 아니라 201.61점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첫 번째 관문을 가볍게 통과했다.

올해 1월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한국의 대표 자격을 얻은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목표를 높이 잡고 더욱 단단한 각오로 준비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에 따라 자신은 물론이고 후배들의 기회의 문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ISU는 올림픽 직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홀로 출전한 선수가 24위 내에 든 나라에는 1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준다. 10위권에 들면 2장, 1~2위에 오르면 3장으로 출전권이 늘어난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연아는 2년 만의 메이저 국제대회 복귀전이기도 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큰 무대가 안겨주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탁월한 기량으로 2009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로 인해 한국 피겨는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올림픽부터 피겨스케이팅 종목에 선수를 파견한 이래 처음으로 세부종목 하나에 세 명의 선수를 내보내는 신기원을 이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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