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선동열 1987년 전설의 명승부

최동원·선동열 1987년 전설의 명승부

입력 2011-09-15 00:00
수정 2011-09-15 00:2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209 vs 232… 승자는 없었다

둘의 대결은 필연이었다. 최동원은 1984년 시즌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했다. 리그 수준을 아예 뛰어넘은 투수였다. 1985년과 1986년에도 각각 20승과 19승을 거뒀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식을 무시하는 연투능력을 보여줬다. 선동열은 1985년 등장했다. 이듬해 24승과 0.99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 평균 자책점 0점대 투수의 등장이었다. 냉철하고도 압도적인 마운드 운영능력을 선보였다.

이미지 확대
14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둘은 1986년 두번 만났다. 4월 19일 첫 맞대결에서 선동열이 1-0 완봉승을 거뒀다. 딱 넉달 뒤 다시 부딪쳤다. 8월 19일 최동원이 2-0 완봉승을 거뒀다. 마지막 대결이자 세 번째 맞대결은 이듬해 5월 16일 펼쳐졌다. 한국 프로야구사 최고 빅매치였다. 15회 연장까지 갔다. 둘은 끝까지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았다. 4시간 56분에 걸친 완투대결. 최동원은 209개 공을 던졌고 선동열은 232개를 던졌다. 그러나 2-2 무승부였다. 야구의 신은 두 영웅 가운데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1-09-15 2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