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대표다-조은지 기자의 훈련기] (12) 국가대표 된 내친구 ‘이제아’

[나는 국가대표다-조은지 기자의 훈련기] (12) 국가대표 된 내친구 ‘이제아’

입력 2011-08-18 00:00
수정 2011-08-1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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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훈련 속 존재 자체로 위안되는 ‘우리’

일 년에 세 달을 한이불을 덮었다.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밥을 먹었다. 여름에는 테니스부, 겨울에는 스키부를 하면서 같이 합숙했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대학문을 나오며 뭉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참 질기다. 요즘도 한 달에 20일을 같이 잔다. 인연이다. ‘친구 따라 럭비 국가대표가 된’ 내 친구 이제아(2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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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럭비 국가대표팀의 서울신문 조은지(오른쪽) 기자와 대학 동기 이제아가 럭비공을 함께 들고 싱긋 웃고 있다.
여자럭비 국가대표팀의 서울신문 조은지(오른쪽) 기자와 대학 동기 이제아가 럭비공을 함께 들고 싱긋 웃고 있다.
2004년 2월이었다. 서울대 체육관에서 만난 부산 소녀 제아는 어색한 표준어로 “은지언니세요? 제가 제아예요.”했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전날 인터넷 채팅을 했던 터. 반가운 듯, 어색한 듯했던 우리의 첫 만남이다. 그렇게 휩쓸리듯 함께 테니스를 배웠고, 또 하얀 겨울을 스키에 바쳤다.

수업시간표도 같았다. 혹독한 막내생활을 겪고 골치 아픈 주장단을 거치며 정은 돈독해졌다. 다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추억’이 켜켜이 쌓였다.

지난 4월이었다.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전 있다는데 나갈래?” 대학원(스포츠경영)에 다니던 제아를 꾀었다. 운동신경이나 몸싸움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던 제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OK’했다. 무궁화가 붙은 티셔츠를 준다는 말에 현혹됐던 제아는 막상 선발전이 시작되자 엄청난 승부욕을 발휘하며 당당히 대표에 선발됐다. 귀한 딸이 험한 럭비를 한다니 극구 말리던 어머니도 결국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고된 훈련을 거치며 밤마다 고민도 많았다. 원초적인 근육의 욱신거림부터 럭비의 미래, 우리의 생존(?) 가능성 등등. 장난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마음을 나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세 달이 흘렀다. 제아의 양손은 테이핑투성이고, 살에는 몸싸움하다 생긴 멍이 가득하다. 한창 꾸밀 나이인데 얼굴은 까맣고 근육은 심하게(!) 탄탄하다. 내가 끌어들여 고생시키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그래도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된다. 정말 힘든 훈련 때도 가만히 엉덩이를 톡톡 쳐주는 제아를 보면 힘이 불끈 솟는다. 힘든 훈련에 무릎·발목·허리·손가락 등 성한 구석이라곤 없지만 운동 후 같이 사우나에 앉아 있으면 또 천국이 따로 없다.

익살스러운 감독님 성대모사나 우리들끼리의 유행어를 할 때는 시름이 눈녹 듯 사라진다. 고참급이지만 우리 팀의 재간둥이이자 분위기 메이커다.

처음에는 친구 따라 왔다지만, 제아도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마약 같은’ 럭비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질긴 인연을 이어갈까. 어쨌든 “고맙다, 친구야.”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1-08-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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