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한의사 김지은의 고려의학 이야기] (10) 北 의사담당구역제의 득실

[탈북 한의사 김지은의 고려의학 이야기] (10) 北 의사담당구역제의 득실

입력 2014-04-21 00:00
업데이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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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개업 한의사로 일한 지 벌써 5년이 됐다. 이제 제법 단골환자들도 많이 생겼다. 오래된 환자나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주치의’라고 부른다. 자신들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해달라는 의미인 듯하다. 전혀 낯설지도, 싫지도 않은 단어다. 나는 북한에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주치의로 살아왔다. 북한은 특정의사가 특정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담당구역제’를 두고 있다.

주민 800명당 의사 1명을 기본으로 배치하고 1988년부터 의료인들이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을 맡아 질병은 물론 예방과 건강까지 책임지는 ‘호담당구역제’를 실시하는 등 체계적으로 주민 건강을 관리해왔다. 의사들은 매일 한 번씩 자신의 담당구역에 나가 밤새 몸이 불편한 환자는 없었는지, 오늘 건강상 이유로 출근하지 못한 환자는 없는지 확인한다. 왕진 가방 안에 항상 구급약을 넣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응급투약하거나 검사가 필요한 환자는 병원으로 보낸다. 매일 이런 의료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의사는 담당구역 주민들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세대당 식구는 몇 명인지, 살림살이는 어떤지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 상당히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의사담당구역제가 무조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우선 의사로서 나의 삶이 상당히 피곤했다. 매일 한 번씩 자신의 담당구역에 나가야 했고 몸이 불편하든 아니든 담당환자와 면담을 해야 했으며 만나지 못하면 다음 날 새벽 출근 전에라도 반드시 찾아가야 했다. 당시에는 이런 일상이 의사의 본분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었지만 나의 생활은 없었던 것 같다.

환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할 때 번거롭게 병원을 찾지 않아도 가정방문을 오는 담당의사를 기다려 진찰을 받을 수 있지만 담당이 아닌 다른 의사나 다른 높은 급의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즉 선택진료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가족 중에 의사가 있어도 반드시 담당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환자의 선택권이 제거된 시스템, 의사담당구역제라는 간판 뒤에 숨은 불편함이다.

2014-04-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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