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잠자리, 먹거리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잠자리, 먹거리

입력 2012-07-02 00:00
업데이트 201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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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받은 아버지의 편지가 생각납니다. 자식을 홀로 도회에 보내놓고도 편지를 보낸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객지라지만 주말이면 후딱 다녀올 거리니 그랬을 수도 있고, 우체국까지 십리길을 걸어 나가 편지를 부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도 사흘 후에나 받아볼 수 있으니 편지 쓸 일 있으면 때맞춰 도회로 나가는 마을 사람을 수소문해 인편에 기별하는 게 훨씬 빨랐습니다.

아버지 말씀마따나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거미새끼’ 같은 자식을 유학이랍시고 도회에 보내 놓고 꽤나 불안하셨던 모양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평소 자식들에게 자분자분 속을 드러내시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지 앞가림은 지가 하겠지.”라며 엔간하면 말을 아끼는 분이어서 긴가민가 뜯어 봤습니다. 양면지 절반도 못 채운 편지글에서 아버지는 특히 연탄가스를 조심하라 당부하시며 이런 ‘지침’을 주셨지요. ‘사람이 잘자리는 가려야 하지만 먹거리는 가리는 게 아니다. ’배 곯던 시절이니 집에서처럼 입 짧은 짓 하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잘자리’에 방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자리란 곧 처신을 뜻하는 말일 테니, 매사에 바로 처신하라는 교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딱히 입신양명할 일도 없이 갑남을녀로 사는 세상이니 처신 따위가 그렇게 중요할까만 그날 이후 그 융통성 없는 처신의 중압감이 족쇄처럼 저를 옥죄었던 게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죽도 밥도 아닌’ 삶이 되고 말았는데, 그 교시를 이제 두 딸들에게 물려줍니다.

갈수록 성적으로 개방되는 세상이어서 딸들에게 잘자리 가리라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만은 아닐 터이지만, 그보다는 항상 혀끝으로만 먹거리를 감별하려 드는 요즘 아이들의 대책 없는 ‘음식 낯가림’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 나이쯤 되어 생각해 보니 음식은 혀로 먹을 게 아니라 몸으로 먹어야 함을 알겠는데, 그걸 딸들에게 말하면서도 제풀에 힘이 빠지곤 합니다. 그때와는 이미 세상이 다른데, 저만 그 세상 언저리를 서성이는 것 같아섭니다.

jeshim@seoul.co.kr



2012-07-0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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