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발간 성희롱예방책자 보기에도 부끄러운 인권위

자체 발간 성희롱예방책자 보기에도 부끄러운 인권위

입력 2014-11-09 12:00
수정 2014-11-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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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조사 미흡도 성희롱” 소개…인권위, 내부사건에는 소극적 대응

‘직원의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고서도 조사나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성희롱에 해당한다.’

내부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안일하게 대응해 지탄을 받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작 대국민 홍보용으로 제작, 외부에 배포한 책자에는 이같이 안내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인권위는 작년에 제작한 ‘성희롱예방안내서’에서 ‘인권위가 성희롱으로 판단한 사례’ 13개를 소개했는데, 여기에는 ‘회사가 성희롱 당한 여성 직원에 대한 조사 및 보호조치를 미흡하게 한 행위’도 포함됐다.

19쪽 분량의 이 책자는 성희롱의 정의, 피해 구제방법, 예방법 등을 담고 있으며 500대 기업을 비롯해 여성단체, 교육기관 등에 배포됐다.

인권위는 행위 자체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조직의 소극적인 조치로 인한 2차 피해가 있었다면 이 역시 성희롱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상사의 상습적인 성추행에 시달리던 대기업 여직원 A씨는 이를 회사에 신고했으나 회사 측이 가해자가 성추행을 부인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하자 2007년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A씨는 전보를 요구했으나 7개월간 대기발령 상태로 지냈고, 그 사이 가해자는 명예퇴직 후 계열사의 임원을 맡아 그와 같은 건물에서 일했다.

이후 A씨는 새 부서에 배치받았으나 업무를 맡지 못했고 인사고과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아 승진에서도 누락됐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성희롱 없는 안전한 고용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성희롱 발생 후에도 신속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피해를 가중시켰다”며 회사에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보호조치 및 재발방지 교육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특히 “피해자의 전보 요청이 성희롱 때문이었다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빨리 조치했어야 한다”며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사항임에도 같은 건물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그대로 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해자의 부인만으로 사건을 종결한 것은 피해를 키울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에게도 사용자가 성희롱 근절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줘 성희롱 예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장은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로 고용상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돼 있는데 인권위의 결정은 이 조항을 확대하여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전 서강대 성평등상담실 교수)은 “시민사회에서는 2차 가해 역시 성희롱으로 보지만 법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다”며 “이를 인정한 인권위의 결정은 유권해석임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전향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인권위는 최근 내부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후에도 가해자들에 대해 즉각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뒤늦게 특별감사에 들어가 빈축을 샀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인권위의 한 조사관은 “인권위법상 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 진정이 접수된 사건은 각하 처리하지만, 성희롱 2차 피해가 진행 중인 경우는 각하하지 않고 심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하지만 인권위 내부 현실은 정반대여서 입바른 소리만 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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