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업그레이드] <9·끝> 학교 시설

[안전 업그레이드] <9·끝> 학교 시설

입력 2014-05-19 00:00
수정 201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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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등급 학교건물 67% 3년 이상 사용… ‘안전불감 교실’ 만연

부산의 공립 A학교는 2004년 교육청의 ‘학교 재난위험시설·개축 심의위원회’에서 사용 제한 등급인 ‘D등급’을 받았고 부산의 또 다른 공립 B학교도 이듬해인 2005년 D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 학교들의 건물 개축 예산은 올해 들어 편성됐다. 이 학교들이 D등급 판정을 처음 받은 이래 10여년 동안은 보수, 보강과 같은 ‘땜질식 관리’만 받아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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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위험 학교 옹벽
붕괴 위험 학교 옹벽 18일 인근 주택 재개발 철거 공사로 붕괴 위험에 노출된 서울 중구 환일고등학교의 옹벽이 천막으로 가려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옹벽 곳곳에 금이 가 여름철 장마 때 지반의 흙이 씻겨 내려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 중구와 재개발업체에 안전조치 명령을 내렸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학교 개축 관계자는 “주로 콘크리트 골조인 학교 건물의 균열 부위를 메우고 기둥을 강화시키는 보수, 보강 공사를 하면 건물의 수명이 5~10년 정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A학교와 B학교는 보수, 보강 공사를 했더라도 이미 건물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까지 버텨 왔다는 얘기다.





개축 대신 보수, 보강을 하며 위험한 건물을 유지해 온 것은 비단 두 학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달 전국 교육청의 ‘2014년 학교 재난위험시설 조사’에서 D등급 이하를 받은 104곳 중 67%인 70곳이 2011년 이전에 처음 D등급을 받았다고 교육부가 18일 밝혔다.

D등급은 ‘노후화 정도가 심각해 긴급한 보수와 보강 작업이 필요하고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보다 더 낮은 등급인 E등급은 ‘심각한 결함으로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학생이 상주하는 학교의 특성 때문에 강당이나 체육관이 아닌 교실이 D등급을 받으면 현실적으로 사용을 전면 제한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104곳 중 현재 사용을 중단한 곳은 21곳(20.2%)에 불과하고 83곳(79.8%)은 계속 사용 중이라고 교육부는 파악했다.

D등급을 받은 뒤 몇 년이 지나도 예사롭게 학생들이 학교 건물에서 하루의 3분의1에서 절반(8~12시간) 이상을 생활하는 ‘위험의 만연’ 현상에 학부모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주변 시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학교들도 부랴부랴 학부모 총회 등을 개최해 학교의 상태를 전달하고 보강 및 개축 계획을 설명하고 있지만 불안감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의 사립 C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건물에 균열이 생긴 것을 본 뒤 학부모 총회에 갔는데도 학교 측에서는 ‘D등급에 관계없이 무너질 리 없다’거나 ‘걱정이 지나치다’며 학부모를 안심시키려고만 했다”면서 “D등급을 받은 지 5년 이상 시간이 소요됐고 그동안 학교는 더 낡아졌을 텐데 어떻게 안심하라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들어 교육청과 지역의 교육지원청마다 학교의 안전 실태를 묻거나 안전을 이유로 전학을 갈 수 있는지 묻는 문의가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를 공립초등학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요즘 같은 시절에 학교는 아이를 안심하고 맡기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면서 “만약 학교에서 붕괴 사고라도 난다면 아이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도, 이 나라에서 살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D등급 이하 건물이 가장 많이 포진한 지역은 전남(26곳), 서울(25곳), 경북(16곳) 등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폐교 계획 때문에 건물 개축과 보수를 미루는 경향이 있어 학교 개축 예산이 우선 배정되지 않고 재난에 취약한 건물이 방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D등급 이하 건물이 밀집한 이유는 이 지역에 학교가 많은 데다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던 1960~1970년대에 많이 지어진 건물들이 한꺼번에 노후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에서는 특히 공립보다 사립이 D등급을 받은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는 교육청 직할 건물 2곳을 제외하고 D등급을 받은 학교 건물 23곳 중 8곳이 공립, 15곳이 사립이었다. 공립 중 7곳은 사립학교 수 자체가 극소수인 초등학교였다. 시설이 낡은 서울 지역 사립 중·고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더욱 분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D등급을 받은 지 5년 이상 된 사립학교에 자녀 둘을 잇따라 보낸 한 학부모는 “같은 해에 D등급을 받은 공립학교는 이미 개축이 끝나 학생들이 새 건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금이 가고 냉난방도 안 되는 학교에 불안감을 안은 채 다니고 있다”면서 “교육청 추첨에 따라 배정됐지, 직접 선택한 학교도 아니지 않으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에서 사립학교 노후화가 더 만연한 이유는 학교를 개축할 때의 예산 투입 방식 때문이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사립학교가 개축을 하려면 전체 비용의 30%를 사학 재단이 부담해야 하는 교육부의 지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학교의 교실 건물 증·개축을 위해서는 100억원 정도가 소요되니 사학 재단이 30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데 재단의 여력이 없어 재정 투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교육지원청 중 한곳에서는 “공립학교는 당장 예산이 부족해도 민자로 건물을 짓고 15~20년 동안 갚아 나가는 민간자본유치사업(BTL) 방식으로 신축, 개축을 했지만 사학 건물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사학 재단의 30% 부담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교육부 지침이 바뀌어 사립학교 건물이더라도 안전상 큰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개축 비용의 100%를 정부가 부담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노후화된 사립학교 건물이 개축하게 되면 서울의 학교 안전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시교육청은 기대했다. 하지만 5~10년 동안 위험한 건물을 방치하며 버텨 온 사학 재단에 책임 소재를 따져 묻고 불이익을 주기는커녕 사학이 부담해야 할 30% 몫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일종의 ‘재정 특혜’를 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학이 점점 더 시설 노후화를 방관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다.

일반적으로 도덕적 해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을 초래하기 마련인데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이 가능성을 아주 높게 내다봤다. 김 의원은 “교육의 기본시설인 학교 건물 유지, 보수비를 못 내는 학교 재단은 사실상 파산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이번에 재정을 투입해 건물을 지어 주고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다시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 학교들은 상황 해결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동안 5% 이상 재단전입금을 부담하고 노후화된 학교 건물 정비를 위해 재단 돈을 들여오던 건전한 사학재단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4-05-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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