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기관사도 시동 끄고 줄행랑쳤죠…잘못된 안내 방송부터 정부 무능까지 판박이”

“대구지하철 기관사도 시동 끄고 줄행랑쳤죠…잘못된 안내 방송부터 정부 무능까지 판박이”

입력 2014-04-24 00:00
업데이트 2014-04-24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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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참사 유가족 윤근씨

“‘마스터키’(전동차 전원을 조정하는 키)를 뽑아 열차에 갇힌 승객 200여명을 불타게 한 기관사, ‘움직이면 위험하다’며 승객 400여명을 바닷속 한가운데에 두고 탈출한 선장. 같아도 너무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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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참사 유가족 윤근씨
2003년 대구 참사 유가족 윤근씨
11년 전 대구 지하철 방화로 딸 윤지은(당시 25세)씨를 잃은 윤근(67)씨는 2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와 이후 정부가 보여준 시행착오들은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에게 2003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당시 사망 시간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고, 시신이 엉뚱한 유가족에게 전달되기 일쑤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을 지나던 열차가 화마에 휩싸여 192명이 목숨을 잃고 151명이 다쳤다.

윤씨는 어이없는 두 사고의 공통점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때도 처음 불이 나기 시작한 1079호 승객들은 다 구조됐지만 정작 불이 옮아 붙은 1080호 승객들은 기관사의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믿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탈출 안내를 했어야 할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뽑아 도망가는 바람에 승객들은 타들어가는 객실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고 덧붙였다. 7일 전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역에서 40도 이상 기우는 동안 단원고 학생들이 선내에서 꿈쩍하지 않았던 이유도 10여 차례 흘러나온 안내방송 때문이었다.

수학 교사를 꿈꾸며 대구대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딸 지은씨는 2003년 2월, 임용고시 학원에 가다가 지하철 1080호에 탑승해 변을 당했다. 윤씨는 “지도교수가 연구실에 책상을 놔주겠다고 해 좋아하던 지은이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나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도전, 골든벨’이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문제를 풀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데, 부모들은 오죽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윤씨는 ‘냄비’와 같은 우리 사회가 ‘무쇠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이런 사고 직후에는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질타하며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공유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가족들은 한때만 들끓는 여론 탓에 더 외롭다”고 했다. 윤씨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일시적으로 들끓는 게 아니라 무쇠솥처럼 뜨끈뜨끈하게 달궈져서 식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추모사업을 약속했지만, 국민의 눈이 다른 데로 쏠리자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지난 11년간 2·18 대구지하철 참사 대책위원회에서 대책위원으로 활동한 윤씨는 전날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았다. 11년 전 대구 중앙역에 자리를 깔고 누웠던 윤씨는 “팽목항과 체육관에 힘없이 누워 있는 실종자 가족을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뒤 윤씨는 “정부가 대형 참사에 대응하는 모습은 11년 전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남의 자식을 위해 함께 울고, 애써주는 이웃들은 현장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서 “여기서 희망을 찾는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2014-04-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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