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교수 왜 자살 택했나

KAIST 교수 왜 자살 택했나

입력 2011-04-11 00:00
수정 2011-04-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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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4명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50대 교수까지 유서를 남기고 숨지자, 교수의 자살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KAIST에 따르면 지난 10일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모(54) 교수는 연초부터 고강도의 KAIST 내부 감사와 교육과학기술부의 감사 등을 잇따라 받으며 심적 부담을 크게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연구인건비 문제 등과 관련해 지난 8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검찰고발 방침을 통보받고 고민해 왔으며,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KAIST 관계자는 추정하고 있다.

KAIST 측은 “지난해 박 교수의 연구실에 지급된 운영비 1억원 가운데 2천200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다”며 “지난주 중징계 및 검찰고발 방침을 교과부로부터 통보받고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시무식에서 ‘올해의 KAIST인상’까지 받는 등 학자로서 연구에만 몰두했던 박 교수가 내부 감사에 이은 교과부 감사, 앞으로 계속될 검찰조사 가능성에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생명과학 연구분야의 국내 최고 연구자로 1996년 9월 KAIST에 부임한 박 교수는 고분자물질을 이용해 암이나 유전자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분야에서 국제적인 명망을 얻어왔다.

지난해 2월에는 221건에 달하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등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KAIST 정교수 가운데 1명을 선정하는 ‘최우수 교수’에 꼽혔고, 2009년 4월에는 미국 생체재료학회가 주는 클렘슨상(Clemsen Award)을 수상했다.

클렘슨상은 생체재료 분야 세계 최고 학자들에게만 주는 상으로, 미국인이 아닌 박 교수가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KAIST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08년 7월 새로운 항암 물질을 개발해 쥐 실험에서 항암효과를 입증했으며, 이 연구결과가 약물전달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저널 오브 컨트롤드 릴리스(Journal of Controlled Release)’의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바 있다.

지난해 열린 ‘2010 세계해양포럼’에서는 홍합과 도마뱀 등 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수술용 봉합실로 사용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0년 1월에는 차세대 핵산계열 약물인 소간섭 RNA의 세포 내 전달을 극대화시키는 획기적 나노약물전달 시스템을 개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싣기도 했으며, 2009년 12월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10년간 과학기술분야에서 최고 성과를 낸 연구자 6명에게 주는 창조대상도 받았다.

박 교수는 50세이던 2007년 테뉴어 심사를 일찌감치 통과했기 때문에 서남표 총장의 고강도 개혁과는 일단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생명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낸 박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KAIST 교수 사회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KAIST 교수협 관계자는 “당황스럽다. 과학기술계에 몸담는 이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인 듯 하다”며 “실적 위주의 학교 시스템이 KAIST 사람들을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효율성을 잣대로 몰아붙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KAIST 교수는 “박 교수가 연초부터 KAIST 내부 감사와 교과부 감사 등 조사를 많이 받아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라며 “연구비 유용은 다른 학과에서도 불거지는 문제지만, 학생의 장학금 마련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분도 있어서, 교수들은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한 재학생은 “연구에 대한 정열이 뜨겁고, 연구밖에 모르는 분이었다고 들었는데 뜻밖의 일로 운명을 달리하셔서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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