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 대비한 방사능 검출장비·매뉴얼 제대로 된 게 없다”

“천재지변 대비한 방사능 검출장비·매뉴얼 제대로 된 게 없다”

입력 2011-04-02 00:00
업데이트 2011-04-0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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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지상대담] 日원전사고 국내 영향과 대책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돼 이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국내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를 통해 장기화되고 있는 일본 원전 사고 여파가 국내에 미칠 영향과 대책 등에 대해 심층적인 지상 대담을 가졌다. 대담에는 박군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이헌석 에너지행동 대표,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 소장, 전영신 기상청 황사연구과장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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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국내 안전 대비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박군철(이하 박) 후쿠시마 원전은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그 일대를 사용 가능한 상태로 되돌리려면 10~15년 정도 걸릴 것이다. 이는 국내 원전 안전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내 원전은 안전이 확보돼 있지만 지금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대응한 안전강화책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현장점검과 규제기관의 면밀한 검토를 거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폭넓게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

이헌석(이하 이) 현재 우리의 방사능 방재 대책이 국내에서 핵 관련 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가상해 짜여 있는 것이 문제다. 실제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의 방사능 검출 장비나 대비시설 등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만 하지 다음 단계에 어떻게 대비할지 총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이런 점을 감안, 방사능 안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

→노후 원전을 포함한 국내 원전의 안전도는 이상 없나.

박 후쿠시마 원전도 지진에 대해서는 각각 7도, 9도 등 설계기준 이상에서도 잘 견뎠다. 노후 원전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강화된 현재의 안전규제 기준에 따라 충분히 안전성을 검증받은 뒤 향후 10년 동안 계속 운전을 해도 안전하다는 안전위원회의 기술적 판단에 따라 운전되고 있다.

이 후쿠시마 원전도 진도 9.0의 지진에는 견뎠는데 지진해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의 재난 대책 계획이 제대로 안 됐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예상 이상의 지진이나 지진해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 차원에서 원전사고 계획을 준비 중이다. 한국 원전의 안전성은 일본 원전의 피해와 같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사고는 예상 범위를 벗어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국내 원전에 대한 안전기준 개념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김소구(이하 김)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위치를 잘못 선택한 문제를 드러냈다. 이곳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북미판 등이 만나 충돌하는 판 경계지역으로, 지진과 지진해일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취약한 곳이다. 또 매우 깊고 가파른 일본 해구에서 발생한 해저지진은 지진해일의 운동에너지를 더욱 증폭시켰고, 튀어나온 해안선은 지진해일을 집중적으로 모여들게 만들어 더 큰 피해를 냈다.

→일본 사고 중 우리가 참조할 점은 없나.

박 원자력 이용이 국가 에너지 안보와 녹색성장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방안이라면 진흥과 규제는 상호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시행돼야 할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립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또 하나의 행정위원회 설립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 제도에 안전과 원전 운영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 교과부 소속으로 위원회의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교과부가 총괄한다. 교과부는 사실 원자력 관련 통제 업무와 원자력 기술진흥 업무를 모두 관장하는 기관이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와 심판이 같은 사람이라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교과부의 진흥 업무와 실제 통제 업무를 실질적으로 분리시키는 게 중요하다.

→일본 원전 사고 후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편서풍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데.

이 시뮬레이션 결과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우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사고 대책이 있어도 지리적 특성상 적용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황사도 대책이 없는 것처럼 방사능 문제도 사고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사고 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중국의 치명적 지진은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판내부 지진 혹은 대륙성 지진이어서 해양지진과는 다르고, 지진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따라서 인재만 조심하면 지진이나 지진해일로 인한 원전 사고는 그렇게 염려할 것이 없다고 본다.

전영신(이하 전) 피해 범위는 지표와 상층의 바람, 대기의 안정도, 비나 눈이 내리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나라는 풍하 측에 위치해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중국 기상청, 일본기상청이 비상 대응으로 방사능의 이동 경로와 확산 범위를 우리 기상청에 보내 주고 있다. 결국 한·중·일의 협력이 중요하다.

→일본 원전 사고는 최악의 조건을 가정해도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국내 원전 안전 홍보대책에 문제는 없나.

박 이런 사고는 대게 패닉현상 때문에 사태를 악화시키고 피해를 늘린다. 앞으로 원자력 홍보는 원자력의 안전보다는 국민들이 방사능에 대해 보다 친숙해지도록 잘 설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모르면 두려워지고 유언비어에도 쉽게 현혹된다.

이 우리는 계속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식의 이미지 광고 일색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대형 사고가 나서 터지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 홍보를 한다고 안심할 국민은 없다. 결국 투명성과 진정성이 문제다. 원자력의 위험성과 피해 및 대응책을 있는 대로 알려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편서풍은 우리나라에 안 온다.’고 해서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런 홍보는 역설적으로 많이 해 봤자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국내 원전이 있는 동해안에서의 대형 지진 발생 가능성과 예상 규모는.

김 동해에는 해양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활성단층이 있고 일본 서쪽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어 지진과 지진해일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동해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동해 북부에서는 규모 7.0 이상의 지진도 발생할 수 있다. 동해안에 위치한 원전도 해저지형 관점에서 보면 깊은 바다와 가파른 대륙 경사 등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유사한 점이 많다. 결코 동해안 일대가 지진과 지진해일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조언하고 싶은 말은.

박 가장 절실한 문제는 원자력 산업의 안전한 발전을 위한 ‘원자력 거버넌스’의 확립이다. 원자력은 이번 사태와 한·미 원자력협정, 수출 등이 얽혀 특정 부처가 관장하기 어렵다. 부처를 망라한 거버넌스가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총리 산하 원자력위원회의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 앞으로도 원자력의 위험성은 계속 대두될 것이다. 에너지 문제, 전력 문제에서 벗어나 핵 발전의 위상을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 핵 발전 중심의 우리 에너지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다음 피해국은 한국일 수도 있다. 이번 사고는 우리의 핵 발전 정책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김 지진 전문 연구기관이 없다. 북한도 1974년 국가지진국과 지진연구소를 설립했다. 우리도 속히 국가지진연구원을 만들어 흩어져 있는 전문가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전 일본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물질을 추적해야 하는데 현재 기상청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적으로 방사성물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조직이 없어 확산 모델을 만들고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방사성물질과 기상학을 함께 연구하는 조직과 인력을 키워야 한다.

정리 김효섭·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2011-04-0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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