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최순실씨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활동하며 여러가지 사업의 이권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씨가 8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에 탑승하기 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드러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청와대와 각 중앙부처 업무 문서를 사전에 챙겨본 정황이 포착됐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 작업을 진행한 결과 최씨의 태블릿PC 속 문서 200여건 중 한두 건을 제외하고는 공식 문서번호가 붙기 전의 ‘미완성본’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최씨에게 유출된 것으로 판단한 문건들에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 이명박 정부 집권 당시 북한과의 세차례 비밀 접촉 내용이 담긴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료,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담은 외교부 문건, 국무회의 자료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해당 문건들이 공식 결재 라인과 비공식 업무 협조 형식으로 청와대 부속실로 넘어와 정호성(구속) 전 제1부속비서관의 손을 거쳐 최씨 측에 넘어간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에 압수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음성 녹음 파일에는 최씨가 구체적으로 정씨에게 문서들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음성 파일에는 문서 유출에 관한 대화 외에도 청와대 핵심 기밀인 수석비서관 회의 안건 등에 관한 대화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이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토대로 문서 유출 경위를 추궁하자 “박 대통령의 지시로 연설문을 비롯한 업무 문서들을 최씨 측에 전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1차 대국민 사과 때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며 최씨에게 자료를 보내주도록 한 사실을 부분적으로 시인한 바 있다. 검찰은 최씨가 받아본 문서들이 공식 문서번호가 붙은 최종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아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만 적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최씨 측에 외교·안보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정부 문서를 다량으로 유출했다고 사실상 시인했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만큼 임기 중 기소 가능성과 관계없이 대통령을 상대로 최씨 측에 문서를 내주도록 한 경위와 의도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판례상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정보를 건넨 사람만 처벌하고, 정보를 건네받은 사람은 처벌할 수 없게 돼 있어 최씨는 이와 관련한 별도의 처벌을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