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세대 정치인의 상징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79세.
경북 포항 출신의 이 전 총재는 부산상고를 나와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해 4·19 혁명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7대 국회 때 신민당 전국구 의원을 지내는 등 11대를 제외하고 14대까지 당선돼 7선 의원을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 때 민자당으로 따라가지 않은 고인은 노무현, 홍사덕, 이철 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 총재로 선출된 뒤 이듬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당시 정계복귀 선언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과정에서 DJ와 결별했고, 15대 대선을 거치며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합류해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어 2002년 대선 때는 부산 상고 후배이자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 편에 섰지만,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맡지는 못했다. 이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이 전 총재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등이 찾았다.
발인은 24일로 장지는 4.19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별세
1990년 3당 합당 때 민자당으로 따라가지 않은 고인은 노무현, 홍사덕, 이철 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 총재로 선출된 뒤 이듬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당시 정계복귀 선언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과정에서 DJ와 결별했고, 15대 대선을 거치며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합류해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어 2002년 대선 때는 부산 상고 후배이자 민주당 시절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 편에 섰지만,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맡지는 못했다. 이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이 전 총재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등이 찾았다.
발인은 24일로 장지는 4.19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