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테러라 생각하는 후손들 안타까워”

“독립운동을 테러라 생각하는 후손들 안타까워”

입력 2013-12-18 00:00
업데이트 2013-12-1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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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매헌윤봉길기념관장 “독립운동 정신 잊지 않았으면”

“어린 학생들이 윤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보고 중동 테러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는 19일은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가 일본군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81년이 되는 날이다.

윤 의사의 조카로 젊은 시절 윤 의사 기념사업에 뛰어들어 벌써 40여 년째 윤 의사 의거일과 순국일을 맞이하고 있는 윤주(66) 매헌기념관장은 18일 연합뉴스와 만나 “독립운동가의 나라 사랑과 상애(相愛) 정신이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입을 열었다.

충청남도 예산에서 야학을 운영하면서 ‘농민독본’을 저술하는 등 농촌부흥운동에 힘쓰던 윤 의사는 1930년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채 만주로 떠났다.

윤 관장은 “윤 의사가 고향에 남기고 간 작품만 1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그는 독립운동가이기 이전에 교육자이자 인문학자였다”며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일제의 횡포로 그런 삶을 이룰 수 없었기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윤 의사는 민간인이 아닌 임시정부의 특수부대로서 의거를 감행한 것”이라며 “윤 의사에 대한 판결문에서 의거 장소인 훙커우공원(虹口公園)을 ‘전장’, 윤 의사를 ‘적국의 특무대원’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당시는 분명한 전시 상황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이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는 일화에서 보듯 윤 의사의 의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 고통받던 수많은 아시아인의 염원을 담은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면서 당시 상황의 절박함과 독립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윤 관장은 “보통 독립운동가들은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학문이나 소양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라면서 “그러나 독립운동에 나선 뒤 일제의 탄압을 받아 집안이 몰락해 지금은 대부분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해방 이후 윤 의사와 함께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해함이 고국으로 돌아올 당시 특별열차가 마련되는 등 온 국민이 감격 속에 함께 장례를 치렀는데 고작 50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안락한 미래를 뒤로 하고 나라를 위해 몸바쳤던 이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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