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몽블랑’… 이한영 긴박했던 ‘007 망명’

작전명 ‘몽블랑’… 이한영 긴박했던 ‘007 망명’

입력 2013-04-01 00:00
업데이트 2013-04-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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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외교문건 공개

이한영씨
이한영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씨가 한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을 담은 정부 공식 문건이 30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이씨는 ‘김영철’이라는 가명으로 1982년 스위스를 떠나 한국으로 귀순했으며, 관련 내용은 ‘몽블랑 보고’로 기록됐다. 이씨는 귀순 15년 만인 1997년 2월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피격돼 숨졌다.

31일 공개된 외교부 외교문서인 ‘북한 공작원 김영철 망명사건’(1982년 생산)에 따르면 이씨는 1982년 9월 28일 오전 9시 50분 스위스 제네바 주재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귀순을 요청했다. 이씨의 신병을 확보한 대사관은 귀순 요청 9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7시 이씨의 망명 사실을 긴급 전문으로 서울 외무부 본부에 보고했다. 전문 제목은 ‘몽블랑 보고(1)’라고 달았다. 전문에는 이씨가 김영철이라는 가명을 썼다는 사실과 함께 이씨와의 접촉 경위, 귀순 의사 확인 내용 등이 담겼다. “김영철은 제네바대 병설 어학속성과 연수를 위해 체류 중인 북한 당 연락부 무소속 공작원이며 리민영·이일남(이씨의 북한 본명) 명의의 여권도 소지하고 있다”는 내용도 국내로 보고됐다. 당시 이씨가 스웨터 차림에 운동화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보고된 점으로 볼 때 이씨의 망명 결정은 긴급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스위스 현지의 J공사와 H참사관 등 6명은 이씨를 차에 태우고 프랑스 리옹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씨가 스위스 당국을 통한 귀순에 반대하며 프랑스로 출국하기를 희망한 까닭이었다. 29일 오전 10시 30분 국내로 발송된 전문은 “김영철은 (발각시) ‘무시무시한 보복’을 말하면서 자신에 대한 위해를 의식, 시종 초조하고 불안감을 표시했다”며 당시 긴박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관련 문건 가운데 ‘김영철 귀순 대책건의’라는 문서에는 우리 정부가 당시 4가지 귀순 시나리오를 두고 저울질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외무부가 이씨 일행이 스위스 당국에 망명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국경을 넘었다는 점 때문에 외교적 파장을 우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씨는 스위스→프랑스→벨기에→독일→필리핀→타이완을 거쳐 귀순 요청 나흘 만인 10월 1일 서울에 도착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3-04-0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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