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 중동·아프리카 ‘젊은 피’ 공관장 3인 당찬 포부를 밝히다
“삽 들고 가서 터를 잘 닦고, 한국 외교 지평 확대에 힘쓰겠습니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한 에너지·자원 외교, 개발 협력 외교를 확대하기 위해 젊은 신임 공관장 3인이 뭉쳤다. 11일 아프리카·중동 지역 공관의 공관장으로 임명된 유준하 주바레인 대사대리, 박종대 주우간다 대사대리, 이헌 주르완다 대사대리가 주인공이다. 이달 중 출국하기에 앞서 공관 재개설을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2층 접견실에서 만나 공동 인터뷰를 했다.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에너지·자원 공관 재개설에 맞춰 선임 과장급이 공관장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분관장 등으로 과장을 마친 외교관들이 임명된 사례는 있었지만, 3명의 ‘젊은 피’ 공관장은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어깨가 무거워 보였지만 눈들은 반짝였다. 다음은 공관장 3인과의 일문일답.→선임 과장급이 대거 공관장이 됐다. 지원 계기와 선발 과정은.
-이헌 대사대리 에너지·자원 외교 강화 차원의 공관 재개설과 젊은 간부급을 발탁해 공관장 경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조직 내 필요성이 결합돼 인사가 이뤄졌다. 기존에도 공관 개설에 따른 대사대리 제도가 있었지만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에너지·자원 외교 및 공관장 경쟁 강화 방침에 따라 확대된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됐다.
-유준하 대사대리 바레인 공관이 외환위기(IMF) 이후 1999년에 철수했는데, 현지 교민들의 공관 재개설 요구가 많았다. 다행히 여건이 나아져 공관이 다시 열리게 돼 의미가 크다. 중동 불안이 이어지면서 지난 3월 신속 대응팀 차원에서 바레인에 다녀오는 등 그동안 준비를 해 왔다.
-박종대 대사대리 개도국, 특히 에너지·자원 외교 강화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외교 정책 변화에 따라 유럽 선진국 공관업무에 이어 개도국 공관장 역할에 도전하게 됐다.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박영철 전 주말라위 대사)를 따라 우간다에서 2년간 생활했던 경험도 지원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우간다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공관 개설을 처음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유 대사대리 공관 철수 당시 건물을 처분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백지상태에서 공관·관저 건물을 마련하고 현지 고용원도 채용해야 한다. 일단 호텔 방에 캠프를 차리고 혼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준비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속히 정식 대사관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 대사대리 삽과 곡괭이를 다 들고 가야 한다.(웃음) 맨 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땅부터 열심히 파면서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다.
-박 대사대리 가족과 같이 가는데 현지 행정 인력 1명 외에 당장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내에게 비서 역할을 시키려고 한다.(웃음)
→경력이 화려한데 아프리카·중동 공관으로 가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각오와 포부는.
-박 대사대리 예전처럼 험지는 힘드니까 안 가려고 할 게 아니라, 한국 위상에 맞게 개도국 외교에 전념해야 국익도 신장시킬 수 있다. 한국이 국제적인 역할을 하려면 다른 선진국들처럼 개도국을 상대로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개도국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보람을 느끼고, 우리 역량을 새롭게 발휘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유 대사대리 워싱턴 참사관으로 일하면서는 조직의 톱니바퀴 역할을 했다면, 작은 공관이지만 책임자가 되면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백지상태에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스릴과 성취감, 매력을 느꼈다. 미국과 중동 관계를 다루면서, 중동이 정말 중요한 지역인데 관심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현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외교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 대사대리 아프리카 외교는 1990년대 초반 남·북 동시 유엔 가입 이후, 그리고 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공관이 문을 닫는 등 많이 위축됐다. 외교부가 경제외교를 지향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외교에 기여하게 돼 각오가 남다르다. 르완다는 엄밀히 말하면 자원·에너지 공관이라기보다는 한국처럼 인력 자원이 중요한 곳이다.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새마을운동 등 발전 경험을 더욱 알리고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자원·에너지 공관으로 재개설된 공관의 첫 대사대리로서 역할은.
-유 대사대리 바레인이 정치적·종교적인 이유로 ‘재스민 혁명’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동 지역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만큼 현장에서 정세를 살피면서 한국이 앞으로 중동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본부에 건의할 것이다. 또 현지 교민들을 지원하고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박 대사대리 우간다에는 우리 교민이 300여 명 있다. 오랫동안 터전을 닦은 분들과 사업하는 분들, 봉사단원 등이다. 교민들을 위한 서비스는 물론, 에너지·자원 외교를 위한 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이 대사대리 르완다는 교민이 130여 명인데, 50명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이고 KT 직원 30명이 현지에서 광케이블을 깔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인력 개발에 관심이 큰 르완다에 한국이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현재 재외 공관이 155곳에 이른다. 하드웨어는 갖췄다. 소프트웨어 측면의 발전 방안은.
-유 대사대리 예전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작은 공관이라도 기존의 틀에 매여 답보적이고 형식적인 역할, 본부 훈령만 따를 것이 아니라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국민·교민들의 기대 수준에 맞게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지에서 교민들의 말을 많이 듣고 고민하겠다. 에너지·자원 외교라는 기치 아래 현지 건설업체를 지원함은 물론, 어떤 사업 분야를 개척할 수 있을지 많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박 대사대리 우간다는 에너지·자원 공관이자 공적개발원조(ODA) 중점 공관이다. 이미 선진국들이 많이 진출해 있지만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뛰면서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소수 인원으로도 효율성을 높이도록 할 것이다. 외교 수준을 높여 현지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방안도 강구해 나가겠다.
-이 대사대리 현지에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본부와 공관 모두 열심히 뛰어야 한다. 유기적인 협력과 네트워크도 강화해야 한다.
→외교부와 외교관 후배들에게 격려나 조언을 한다면.
-유 대사대리 저희가 가는 것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라 보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겠다. 후배들에게는 영어로 ‘vocation’(소명)과 ‘vacation’(휴가)이 있는데, 일을 즐기면서 하면 그것이 휴가가 된다는 취지로 이해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외교관 일을 택했다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뜻한 바대로 즐기면서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수 있다고 본다. 당초 뜻했던 꿈을 이룰 수 있으니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박 대사대리 주인 의식을 갖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일, 어려운 일을 풀었을 때의 희열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자기 스스로 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해야 외교부 내 불찰로 이런저런 일이 생길 때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더 프로 정신을 가져야 외교부가 큰 탈 없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관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사대리 외교관 생활을 20년 했는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했다. 외교부가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도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20년을 했고 과장도 했으니 나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무겁다. 예전에는 외교부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창피함도 느꼈다. 그래서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불상사가 없었으면 하고, 더욱 열심히 그러나 겸허하게 생활하겠다.
인터뷰 도중, 외교부 인사과에서 이들이 대사대리로 공식 발령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 이 대사대리는 13일 가장 먼저 르완다로 출국하고, 박 대사대리는 오는 16일 우간다로 출국할 예정이다. 유 대사대리는 이달 중 출국하기로 하고 바레인 정부 측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중동·아프리카 험지 공관에 대한민국의 깃발을 꽂기 위해 떠나는 이들의 어깨에 한국 외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이종원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2011-05-12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