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블로그] 어느 당직자의 쓸쓸한 죽음

[여의도 블로그] 어느 당직자의 쓸쓸한 죽음

입력 2011-04-02 00:00
업데이트 2011-04-0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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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서울 신촌의 한 종합병원 영안실, 40대 후반 남자의 빈소 앞에 황망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따뜻한 봄날이라지만 다들 두꺼운 옷자락을 여미며 어쩔 줄 모른 채 서성이고 있었다. 지난 달 29일 수면 내시경을 받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둔 박현무 민주당 생활정치국장.

고인은 큰 덩치만큼 마음도 넉넉한 사람이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조직부장으로 들어온 뒤 주로 조직국과 생활정치국 등 사람을 묶어내는 부서에서 일했다. 고인과 밥 한끼라도 같이하려면 최소한 2주 전쯤 약속을 잡아야 했다. 술 자리에서 ‘알자지라 방송’ 앵커를 흉내내며 ‘가짜 아랍어’를 구사할 땐 모두들 자지러졌다. 수면 내시경을 받은 것도 4·27 재·보선 분당 실무자로 파견되기 전 스스로에 대한 건강 다짐이었다고 한다.

대구 출신으로 ‘호남당’에 들어오기까지 숱한 마음의 전쟁을 치렀다고 말하곤 했다. 고인 스스로가 적어도 민주당에선 ‘전국 정당화’의 상징인 셈이다.

고인의 사소한 모습이라도 큰 메아리가 되는 곳, 영안실 풍경은 어디나 한결같다. 세상과 고인과 나 사이의 먼 거리를 좁히려는지 다들 사연들을 꺼내놓는다. 고인이 직접 출마해 자기 정치를 하고 싶어 했다는 기억이 교집합으로 겹쳐졌다. 그러나 고인은 “외부에서 따뜻하게 살던 사람들만 대접받는다.”며 당직자들에게 야박한 공천 문화를 안타까워했다. 어느 분야나 10년 넘으면 전문가로 대접받는데 유독 당직자만 ‘정치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힘겨워 하기도 했다. 좋은 인재를 받아들여 훈련시키고 배출하는 것이 정당의 임무라고 보면 고인의 회한에 한참동안 고개가 끄덕여진다.

민주당은 2일 오전 영등포당사 앞에서 노제를 치르며 마지막 고인의 길을 배웅한다. 생을 다해 자신을 보여주고 떠나는 길, 마음 속 구김살 남김 없이 다 지우고 편안히 잠드시길 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011-04-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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