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파묘, 그 이후
그들은 왜
부모 묘지를 파버렸을까
장묘업자 김왕기(62)씨가 지난달 27일 강원 춘천의 한 야산에서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할아버지 산소에서 개토제(땅을 파기 전 지내는 제사)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 박영식(69)씨는 울컥하는 마음을 들킬까 싶어 함께 온 맏조카를 먼저 보냈다. 40년 넘게 고인을 추모하던 장소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매년 추석과 한식이면 정성스레 조상의 묘지를 돌보던 박씨는 “지금 어른들이 묘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큰 짐이 될 것 같아 파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래픽 김예원
파묘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예순이 넘으면서부터다. 벌초가 힘에 부칠 무렵 ‘다음 세대부터는 묘지 관리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들과 어린 질손(조카의 자식)들이 자신처럼 묘지 관리를 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가족끼리 의논하던 중 장손인 형이 세상을 떠나자 고민은 결심이 됐다.
지난 3월 조부와 부모의 묘를 없앤 박영식(69·맨 오른쪽)씨가 작년 김해 추모공원에서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성묘하는 모습. 오는 추석은 박씨가 파묘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사진 본인 제공
다가오는 추석은 박씨가 파묘한 뒤 처음 맞는 명절이다. 늘 해 오던 성묘 대신 큰집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박씨는 “성묘를 가면 가족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계기도 됐는데 그걸 못 하니 섭섭하다”면서 “이제 그냥 마음으로만 추모하는 거지”라며 웃었다.
“우리 세대서 정리하고 싶었다”
미혼 아들과 조카가 관리할지 의문
40년 지킨 슬픔 삼키고 산에 뿌려
이젠 추석 성묘 대신 마음으로 추모
유언대로 부모 화장해 밭 한쪽 안치
농작물 심어 가족과 月1~2회 방문
지난해 12월 장난영(50)씨는 아버지의 무덤을 개장한 자리에 부모님의 유골을 합동 안치했다. 고향인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씨는 주변에 농작물을 심어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사진 본인 제공
장씨는 부모님의 유골을 화장해 고향 밭 한쪽에 묻었다. 옆에는 땅콩도 심고 고구마도 심었다. 그 덕에 장씨는 가족과 함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봉안묘를 방문한다. 봉분이 없으니 풀이 잘 자라지 않아 관리에 대한 부담은 적다. 장씨는 “당장은 서운한 마음에 돌을 올려 자리를 표시했지만 나중에 돌을 걷어 내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제 돌만 치우면 되는 일이라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무덤을 파묘 후 부모님의 봉안묘를 만든 장난영(50)씨가 지난 10일 경북 예천에 있는 밭에 있는 봉안묘에 가족들과 방문한 모습. 이날 장씨네 가족은 봉안묘 주변에 난 풀을 정리하고 밭에 심은 농작물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본인 제공
2021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마음 때문에 부친을 봉안당에 모셨다. 조씨는 “아버지는 내심 선산으로 갔으면 하셨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모셔야 자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삼남매가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고향 선산은 남자들이 명절마다 벌초를 하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행업체를 쓰는 등 직접 관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씨는 어머니의 유골을 아버지가 계신 봉안당에 합동 안치했다. 하지만 봉안당도 영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봉안당 관리 기간이 통상 20~30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세대 자식들도 나이 들고서는 챙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묘를 없애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치하느니 가까운 곳으로”
선산 묻히면 벌초·관리도 힘들어
불교 봉안당 모셔 절 갈 때마다 봬
20~30년 뒤엔 묘도 없애는 게 맞아
개장 유골 화장 10년 새 53% 증가
“다음 세대 부담 될라, 당분간 늘 듯”
김정아(39)씨는 지난 3월 진주에 있던 시할머니의 묘지를 개장 후 경남 양산 소재의 불교 봉안당에 안치했다. 사진 본인 제공
그래픽 김예원
이철영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조상의 묘지를 돌보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믿고 감당하던 세대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관리가 불가능해지자 묘지를 하나둘씩 정리하는 것”이라며 “다음 세대에 부담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개장 움직임은 당분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초빙교수는 “묘지 개장 수요가 몰리는 윤달에만 할 필요는 없다”며 “윤달이 아닌 때에 개장이나 이장을 하면 화장장 예약도 쉽고 가격도 저렴한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QR 찍으면 유튜브로<br>
서울신문의 ‘파묘: 조상님 묘를 옮기겠습니다’ 기획 기사는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b2AsRnTwc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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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5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