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숨은 비경’ 말라티아·샨르우르파

터키의 ‘숨은 비경’ 말라티아·샨르우르파

입력 2012-07-12 00:00
업데이트 2012-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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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협곡·거대한 인공산… ‘억겁의 신비’를 만나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에페수스, 이즈미르…. 터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명소들이다. 어떤 이는 이 몇몇 곳에 지중해의 안탈리아나 흑해의 트라브존 등을 더해 터키의 전부를 가봤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다리만 만져 보고 코끼리의 전부를 안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아시아로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곳곳에 시루떡 같은 층층의 역사와 비경을 품고 있다. 남동부에 위치한 말라티아와 샨르우르파도 그 명단에서 빠지면 섭섭하다고 할 곳들이다. 그곳에 가면 억겁의 시간 동안 오롯이 감춰뒀던 터키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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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티아 서쪽에 있는 레벤트 협곡. 총 28㎞의 협곡에는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있다.
말라티아 서쪽에 있는 레벤트 협곡. 총 28㎞의 협곡에는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있다.


●6500만 년 전의 비경 레벤트 협곡

아나톨리아 남동쪽에 위치한 말라티아. 여행자들에게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금세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유프라테스강과 그 지류들이 만들어 놓은 너른 평야를 자랑하는 이곳은 살구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초여름이면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살구나무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말라티아의 비경은 레벤트 협곡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말라티아 시내에서 서쪽으로 60㎞ 정도 달리면 만나는 이 협곡 앞에 서면 누구든 감탄사를 아끼지 못한다. 고원에서 내려다보는 까마득한 절벽은 아찔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제공한다. 주변에는 고산지대 특유의 키 낮은 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꾸며 놓았다. 원래 이 일대는 바다였다고 한다. 6500만 년 전에 바닷물이 빠진 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총 28㎞의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심어 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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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트 협곡 동굴집에서 사는 슈크르 쿠르트가 바위를 뚫어서 낸 길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레벤트 협곡 동굴집에서 사는 슈크르 쿠르트가 바위를 뚫어서 낸 길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황량한 이 협곡 일대에도 95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70가구 400명 이상이 살구농사 등을 지으며 살고 있다.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 중간의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큐축 퀴르네 마을의 슈크르 쿠르트(63). 옛날부터 이 마을을 지배했던 쿠르트 왕국의 60대 후손이라는 그는 조상 대대로 1000년 이상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히타이트, 로마, 비잔티움, 셀주크와 오스만 튀르크 등이 차례로 지배하면서 지나갔던 전쟁의 와중에도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한 셈이다.

쿠르트는 겨울에는 말라티아 시내에 살지만 여름에는 내내 동굴집에서 산다. 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얼굴에 배어 있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이 레벤트 협곡을 자연스포츠의 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트레킹 코스와 공중 테라스를 개설한 데 이어 번지점프대 등 각종 레포츠 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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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루트 산 위의 거대한 돌무덤과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석상들.
넴루트 산 위의 거대한 돌무덤과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석상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망상이 낳은 ‘위대한 유산’ 넴루트 산

터키 동남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넴루트 산이다. 해발 2150m로 말라티아 주와 아드야만 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넴루트 산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깔 모양의 인공 산. 멀리서 가져온 거대한 돌을 주먹만 하게 쪼개 50m 높이로 쌓아 만든 돌무덤이다. 무덤치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거창하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역사 속에서 잠깐 빛났다 사라진 콤마게네 왕국의 왕 안티오코스 1세. 콤마게네 왕국은 기원전 190년경부터 유프라테스 상류에 존속한 작은 국가였다. 서기 72년 로마에 흡수되면서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넴루트 산의 정상에 오르면 고대 신들의 조각상이 산재해 있다. 자신을 신과 동급으로 생각했던 안티오코스 1세는 거대한 돌덩이로 동·서쪽에 테라스를 만들고 자신을 포함해 아폴론, 제우스, 헤라클레스 등 신들의 석상을 세웠다. 이곳에는 신상들 외에도 사자와 독수리 석상, 그리고 안티오코스가 여러 신들과 악수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조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었던 안티오코스 1세의 ‘불멸의 꿈’은 자연의 힘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높이 8~9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들은 당초 의자에 앉은 형상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해 머리가 몸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다. 신이 되려고 했던 한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허무한 모습으로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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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르우르파의 발르클르 연못. 아브라함이 화형당하기 직전에 살아났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샨르우르파의 발르클르 연못. 아브라함이 화형당하기 직전에 살아났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아브라함의 땅…지상 最古의 신전을 찾아

넴루트 산에서 아드야만 쪽으로 하산해서 남쪽으로 4시간 정도 달리면 샨르우르파에 이른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공통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의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과, 그가 니므롯 왕에 의해 화형당하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전설을 품은 발르클르 연못, 욥의 동굴 등이 있어 사철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샨르우르파에서 시리아 접경 쪽으로 40㎞ 정도 내려가면 폐허의 도시 하란이 있다. 이곳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정착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15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아내가 될 라헬을 처음 만났다는 야곱의 샘도 이곳에 있다.

샨르우르파 외곽 언덕 위의 괴벡리테페에는 1만 2000년 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이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발굴현장 앞에 서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혼자 서 있거나 지지대에 기댄 거대한 돌들, 그리고 돌마다 새겨진 조각들. 서 있는 돌 중에 큰 것은 높이가 무려 5.5m나 된다. 수십t에 달하는 이 돌들은 700m 떨어진 곳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돌 이외에는 어떤 도구도 없던 그 시절, 기계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그 험난한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석회암 기둥에 양각으로 새겨진 소, 뱀, 여우, 멧돼지 등의 동물은 무척 정교하다. 사람 형상도 있는데 여우 가죽을 통째로 허리띠처럼 둘러 ‘중요 부분’을 가렸다. 1963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곳에는 모두 24개의 신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6개에 불과하다. 보면 볼수록 감탄을 아끼기 어렵다. 인간이라지만 겨우 유인원을 벗어나 동굴에 거주했을 그때, 무슨 염원을 품고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안으며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귀 기울여 본다.

글 사진 말라티야·샨르우르파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여행수첩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에서 말라티야까지 1일 2회의 직항과 샨르우르파까지 직항 2회·앙카라 경유 2회를 운항하고 있다.

▲레벤트 협곡과 넴루트 산을 오를 때는 여름에도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특히 넴루트 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오를 때는 두꺼운 옷이나 담요가 필수다.

▲샨르우르파는 기온이 최고 50도까지 올라간다. 한여름의 한낮에는 활동을 피하는 게 좋다.

▲말라티야는 살구와 체리 등 과일로 유명한데 말린 살구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샨르우르파는 고추의 집산지로 매운 케밥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음식에 구운 고추가 따라 나오는데 무척 매우니 덥석 먹는 건 금물.

2012-07-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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