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칭기즈칸 아닌 인간 테무친의 삶

영웅 칭기즈칸 아닌 인간 테무친의 삶

입력 2012-02-25 00:00
업데이트 2012-02-25 00:2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조드】 김형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정복왕은 누구일까.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부르주아 혁명을 파급시킨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2차 세계대전의 주역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런 인물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면 당신은 유럽중심의 사관에 크게 경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땅따먹기에서 최고의 권위자는 몽골의 칭기즈칸이라는 것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떠오른 정설이다. 의심이 든다면 땅따먹기한 땅의 크기를 지도로 그려 가며 비교해 보면 된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인 김형수가 펴낸 장편소설 ‘조드’(자음과모음 펴냄)는 12세기 초원에 버려진 ‘자연인’인 테무친이란 한 소년의 파란만장한 생존투쟁을 그려 낸 서사다. 김형수는 수많은 전쟁 영웅을 숭배하는 서사를 거부하고, 어린 시절 테무친이라 불린 칭기즈칸을, 정복전쟁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인물로 형상화해 나갔다.

‘조드’는 몽골 언어로 극심한 겨울 가뭄과 혹독한 겨울 추위를 말한다. 저자는 수백 마리의 양과 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자연 재앙을 뚫고 살아갔던 12세기 몽골인들의 삶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작가는 21세기 인류가 환멸을 느껴 근대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정착문명과 이동문명이, 유목민과 농경민의 충돌을 일으킨 12~13세기 몽골을 중심으로 한 인간형을 찾아갈 때 부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유럽 중심의 낡은 역사관을 대체한 그림으로서, 광활한 세계 창조에 맞는 인간 칭기즈칸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조드를 통해 칭기즈칸이 단련되고, 새로운 문명사를 썼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작가는 십수 년 동안 진행된 탈근대, 탈냉전, 탈이데올로기를 찾아가려는 문학 내 움직임을 소설로 표현했고, ‘더 바른 세계사상’을 제시하려는 노력에 자신도 동참한 것이라고 했다.

소설 초기에 등장하는 푸른 늑대 족의 신화를 읽을 때는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하고 때론 답답한데, 1장을 넘어서면서는 시원시원하고 남성다운 필치들로 12세기 초원을 그려 놓아 읽기가 수월하다. 다만 허영만의 장편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말무사)의 스토리 전개와 그림이 자주 머릿속에 떠올라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곤 한다.

작가가 몽골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쓴 소설로 이 소설을 인터넷에 연재하는 10개월 동안 몽골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은 테무친이 초원을 평정할 때까지의 시간을 그렸는데, 작가는 이후에 테무친이 대칸에 올라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앞으로 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2-02-25 20면
많이 본 뉴스
핵무장 논쟁,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평화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독자 핵무장 찬성
독자 핵무장 반대
사회적 논의 필요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