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피아노맨이 고른 보물 피아노… 백건우는 ‘중후’ 조성진은 ‘개성’

국보 피아노맨이 고른 보물 피아노… 백건우는 ‘중후’ 조성진은 ‘개성’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1-31 20:30
수정 2021-02-0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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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들의 ‘공연장 피아노’

주요 공연장 스타인웨이 피아노 보유
연주자 공연 전 모든 악기 쳐보며 확인
115는 맑고 또랑또랑 318은 중후한 멋
악기 일련번호마다 울림통·음색 달라
공연 성격·자신 취향 따라 피아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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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들은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과 프로그램 등에 어울리는 피아노를 꼼꼼히 고른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지난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피아노를 모두 꺼내 타건을 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피아니스트들은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과 프로그램 등에 어울리는 피아노를 꼼꼼히 고른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지난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피아노를 모두 꺼내 타건을 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을 하루 앞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무대 위에서 연주할 피아노를 골랐다. 보통 악기보관실에서 피아노를 고르지만 이 공연장에선 처음 독주회를 갖는 그는 직접 무대로 피아노 4대를 모두 꺼내 공연장 울림까지 확인했다. 선우예권이 고른 피아노는 최근 김선욱(1월 11·12일), 임동민·임동혁 형제(1월 13일)도 사용할 만큼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악기였다. 롯데콘서트홀이 보유한 스타인웨이 앤 선스 4대는 2016년 개관 당시 손열음이 직접 독일 스타인웨이 본사에서 타건을 해 본 뒤 선택한 것들이다.

피아니스트들에겐 늘 다른 악기로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야 하는 숙명이 있다. 블라드미르 호로비츠가 피아노를 비행기에 싣고 다녔다는 일화도 유명하지만 대다수 연주자들은 맨몸으로 공연장에서 악기를 만난다. 주요 공연장에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인웨이 콘서트용 풀사이즈(D274)가 놓였지만 악기마다 음색이 크게 달라 ‘피아노 고르기’는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최근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한 피아노는 2013년 신수정·이진상 교수가 직접 골라 온 2대 가운데 하나인 스타인웨이 594115(일련번호) 피아노다. 특히 젊은 연주자들이 선호한다. 이 교수는 “울림통이 가장 큰 피아노를 선택했다”면서 “울림이 좋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져오면 훌륭한 조율사가 세공하고 연주자들의 손길이 깃들어 악기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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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인웨이 콘서트용 풀사이즈 피아노.  롯데콘서트홀 제공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인웨이 콘서트용 풀사이즈 피아노.
롯데콘서트홀 제공
백건우, 언드라시 시프 등 거장들은 2005년 구입한 571318 피아노를 주로 선택했다. 예술의전당 이수미 무대감독은 “115는 어린아이 목소리처럼 또랑또랑하고 맑은 음색을 내고, 318는 중후한 멋이 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이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 특히 잘 어울렸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9월 후원회 지원으로 새 피아노를 구입했다. 일련번호 615023. 2억 7000만원대 악기 후원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피아노에 ‘예술의전당 후원회’ 문구를 담기로 한 계획을 스타인웨이 측이 받아들여 주문 제작이 이뤄졌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글이 새겨진 스타인웨이다. 이 특별한 피아노를 가장 처음 무대에서 연주한 사람은 바로 조성진이었다. 지난해 11월 4일 두 차례 리사이틀을 가진 조성진은 스타인웨이 4대 가운데 “음색이 통통 튀고 맑다”며 이 악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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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들은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과 프로그램 등에 어울리는 피아노를 꼼꼼히 고른다. 김선욱은 성남아트센터에서 마음에 들었던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 선율과 더 잘 어울리는 피아노로 연주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피아니스트들은 공연을 앞두고 컨디션과 프로그램 등에 어울리는 피아노를 꼼꼼히 고른다. 김선욱은 성남아트센터에서 마음에 들었던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 선율과 더 잘 어울리는 피아노로 연주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2019년 11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했던 김선욱은 당시 신중하게 선택한 피아노가 매우 만족스러워 지난해 12월 20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듀오 리사이틀에서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리허설 중 자신의 연주 느낌보다는 바이올린과 협주할 때 화음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다른 악기로 교체했다. 성남아트센터 관계자는 “연주자가 미리 선택한 피아노만 조율하려다 혹시나 싶어 두 대 모두 준비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경기아트센터에 있는 스타인웨이 4대 가운데 2대는 2017년 임동혁이 구입에 도움을 줬다. 본사에서 9대를 쳐 보고 그가 처음 만져 보자마자 고른 ‘1번 피아노’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고른 ‘2번 피아노’였다. 이 중 최근 조성진, 백건우, 김정원, 당 타이 손 등이 연주한 2번 피아노가 인기가 높다.

같은 악기도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금호아트홀 연세에는 2009년 광화문 시절부터 함께한 스타인웨이보다 2015년 피아노가 더 명료하고 깔끔한 소리를 낸다고 연주자들이 좋아했는데, 2019년 12월 세르게이 바바얀은 2009년 피아노를 골랐다. 금호아트홀 관계자는 “그 피아노가 그렇게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었느냐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롯데콘서트홀 무대를 갖는 연주자들 중엔 피아노를 고를 때 “조성진, 백건우 선생님이 연주하신 게 무엇이냐”는 질문도 많다고 한다. 공연장 측에선 특정 피아노만 사용하지 않고 프로그램 선곡과 분위기에 따라 적절히 고르도록 조언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0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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