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분단 현실 읊던 노작가, 소설의 본령 정의하다

사랑·분단 현실 읊던 노작가, 소설의 본령 정의하다

입력 2012-02-28 00:00
업데이트 2012-02-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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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장편 ‘설향’ 펴낸 정소성

“역시 소설의 본령은, 몇 백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요즘 사랑과 우리 시대 사랑에 차이가 있을까요. 세대를 초월해 달라지지 않은 사랑의 본질을 담아냈습니다.” 27일 서울 인사동 한 한식당에서 만난 정소성(68) 작가는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설향(雪鄕·시와에세이 펴냄)’을 이렇게 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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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성 작가
정소성 작가
기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표지가 참 잘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눈이 소복이 덮인 너른 벌판에 한 사람이 빨간 문 앞에 서있는 그림이다. ‘설향’ 제목 그대로다. 그는 “사랑을 너무 본능에 충실해 쓰면 추악해보일 수 있다.”면서 “순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딱 그 모습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온갖 인생사를 다 맛봤을 법한, 원로 소설가는 책에서 사랑을 미화한다. 미술을 전공하는 현우의 시점에서, 미대 친구인 태현과 혜란, 미라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나 사랑에서나 모범생인 현우는 혜란을 향한 사랑과 욕망을 자제하면서 태현과 우정을 지키려고 애쓴다. 간혹 균열이 있지만, 균형감이 더 크다.

# 순백의 사랑으로 ‘전향’한 셈

이런 사랑 이야기는,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면 전향이나 다름없다.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정 작가는 1983년 첫 장편 ‘천년을 내리는 눈’을 시작으로, ‘여자의 성’(1990), ‘소설 대동여지도’(전 4권·1994·월탄문학상 수상), ‘태양인’(1997), ‘두 아내’(1999), ‘바람의 여인’(2005) 등 장편 14편을 냈다. 1985년에는 중편 ‘아테네 가는 배’로 17회 동인문학상(1985)을, ‘뜨거운 강’으로 제1회 윤동주문학상을 받았다. 다른 중편인 ‘말’로는 1988년 만우 박영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대부분이 분단 현실과 이데올로기,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런 그가 청춘 남녀의 사랑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동안 사회인으로서, 소설가로서, 역사를 탐구하고 사회상을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 산물이 지금의 작품들이죠. 하지만 이제 이 나이가 되니 그것들에서 초탈하고, 순수문학의 본령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자극적인 애정관계에 익숙한 젊은 독자에게는 고루해보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받자 작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쉽고 편한 친구 같은 연애를 많이 하는 요즘 세대와 괴리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세대를 거쳐 변신을 거듭해도, 끊임없이 그립고 가지고 싶은, 사랑 바탕에 깔린 감정은 그대로이지 않나 싶습니다. 세대를 넘어선 공감이 있을 것이라 믿는 거죠.”

# 쓰는 게 즐거워… 사랑 탐구 계속

그는 “소설의 배경인 된 경기도 연천은 아들이 군복무를 했던 곳”이라면서 “자주 면회를 하면서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젊은이들의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2009년, 단국대 교수직 퇴임 직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다들 병환 탓에 창작활동에서 멀어지나 했지만 그 사이 중편 6편, 단편 10편 등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병마를 겪어보니 늙음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초조함, 시간과 싸움을 하는 듯하다.”는 그는 “앉아서 쓰는 게 이렇게 즐거우니 집필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인간의 사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12-02-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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