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때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빗댄 유언비어 등장
13일 후쿠시마 7.3 강진에 피해 속출하자트위터서 “조선인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타”
“최악 차별 선동” 지적에 “장난인데 과민”
2016년 지진 때도…“간토대학살은 음모론”
국내 네티즌 “지진 피해 온정 마음 사라져”
일본 해상 자위대가 2018년 10월 도쿄 아사카 훈련장에서 사열행사를 갖고 있다. 일본은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앞세우며 군사대국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조선인이 후쿠시마(福島) 우물에 독을 타고 있는 것을 봤다!”
“조선인이 후쿠시마(福島) 우물에 독을 타고 있는 것을 봤다!” 트윗
한 네티즌의 리트윗 캡처. 문제의 트위터 계정은 현재 삭제된 상태임. 연합뉴스
한 네티즌의 리트윗 캡처. 문제의 트위터 계정은 현재 삭제된 상태임. 연합뉴스
지난 13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강진이 발생한 지 18분 만에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유언비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돈 것이다.
13일 7.3 규모 강진에 일본 큰 피해
혐한 감정 부추기는 글 SNS에 올라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일으킨 동일본대지진 10년을 목전에 두고 주말 밤인 오후 11시 8분쯤 후쿠시마 현 앞마다에서 규모 7.3으로 추정되는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수십초 간 이어진 강진에 150여명이 다쳤고 300개 이상의 학교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중 71개교는 휴교했다.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과 단수로 5000가구 이상이 불편을 겪었다.
이 와중에 올라온 이 트윗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 대지진의 혼란 속에 일본 정부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로 조선인 수천명이 자경단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일본 내무성은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기 위해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경찰에 내려보냈다. 이후 일부 일본 언론이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적개심을 유발하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보도하면서 무자비한 조선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됐다.
‘大正 十二年 九月一日’(다이쇼 12년 9월 1일)이라고 적힌 사진은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조선인 수천명 살해“지진 편승해 증오범죄, 부끄러운 줄 알아야”
간토대지진 당시 숨진 조선인은 최소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상기시키는 트윗에 대해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재일 한국인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간토대지진을 떠올리게 하는 최저·최악의 차별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네티즌도 “코로나의 만연으로 아시아계에 대한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증오 범죄)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다”면서 “지진에 편승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식의 트윗을 하는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도 한 발 국외로 나가면 증오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이 쇄도하는 가운데 문제의 트윗을 올린 트위터 계정은 삭제된 상태다.
2016년 구마모토(熊本) 지진 때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퍼트렸다’는 유언비어가 인터넷에서 퍼져 재일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줬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탔다” 日 지진 피해에 한국 탓 트윗 논란
삭제된 문제의 트위터 계정. 연합뉴스
1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한 지진의 영향으로 후쿠시마현의 한 주택이 심하게 파손돼 있다. 2021.2.14
교도 연합뉴스
교도 연합뉴스
일본 내각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4월부터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가 2009년 작성한 보고서.
아사히신문 캡처
아사히신문 캡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음모론”
日우익 “대지진으로 日여성 강간한
이민족 결코 잊어선 안 돼” 한국 겨냥
이를 놓고 단순한 장난인데 조선인 차별 선동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일부 네티즌은 “농담이 악취미이고 재미없다는 것은 알겠지만 ‘차별 선동’이라는 식으로 논의할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음모론이라며 당시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이민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2017년 중의원 선거에 ‘희망의 당’ 후보로 입후보한 경력이 있는 하시모토 고토에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음모론을 펴는 사람이 있다”면서 “대지진 후 일본 여성을 강간한 이민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시모토는 일본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회원이라고 트위터 계정에 자신을 소개하며 차별을 조장하는 글들을 게재했다.
일본 우익단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종전기념일(패전일)인 15일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2018.8.15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반성 없는 세계 최악의 범죄자 집단”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국내 네티즌들은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부 일본인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한 네티즌은 “반성 없는 세계 최악의 범죄자 집단”이라고 분노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인성이 안됐다”면서 “독일 같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텐데 바보 같은 것들이 자신들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선진국이라더니 아직도 우물물을 퍼다 먹느냐”, “지진 피해에 온정의 마음이 있었는데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싹 사라진다”, “정도가 지나친 장난”, “일본 국격의 추락이 무섭다”, “일본 망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등등의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1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의 한 가정집의 가구가 넘어져 넘어져 있다. 2021.2.14
교도 연합뉴스
교도 연합뉴스
1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 규모 7.1로 추정되는 강한 지진이 발생한 뒤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의 한 주류 매장에서 점장이 지진으로 인해 깨진 술병을 치우고 있다. 2021.2.14
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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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현의 한 목조 시설물이 쓰러져 있다. 2021.2.14
교도 연합뉴스
교도 연합뉴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