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정상 합의…“악마는 미세한 곳에 숨어 있다”

EU정상 합의…“악마는 미세한 곳에 숨어 있다”

입력 2012-07-02 00:00
수정 201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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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안정 긴급대책 전제조건 둘러싼 논란 일어

유럽연합(EU)이 지난달 28~29일 이틀 간 정상회의에서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한 금융안정 긴급대책이 그 전제 조건 때문에 효과가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구제기금의 은행 직접 대출, 국채 매입을 허용하고 구제기금의 우선 변제권을 없애기로 한 것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로존 국채시장을 안정시킬 중요한 정책들이다.

타결 사항이 발표된 이후 유럽증시가 급등세를 보이고 유로화 가치가 급상승한 반면 위험수위를 넘나들던 스페인 등의 국채금리가 크게 떨어졌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주장처럼 이번 합의가 ‘획기적’이지는 않더라도 시장에 상당한 즉효를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합의의 ‘약효’가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들이 주말을 전후해 나오고 있다. 상당수 증시 전문가들은 2일 금융시장이 다시 문을 열면 정상회담 합의 직후 시장의 흥분된 반응과 주가 급등이 급격하게 세를 잃는 과거의 양상이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유로채권 발행과 구제기금 대폭 증액. ‘은행동맹’ 등 근본적인 치유책들이 이번에 합의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EU는 당초부터 이런 대책은 중장기 과제이며 오는 12월 정례 정상회담에서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이번에 합의한 3개 긴급 지원책에 딸린 전제조건이며 그 조건의 세부 내용이 마련되지 않아 스페인 등의 국채시장 안정효과가 생각처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1일 지적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함께 타결된 전제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재정적자 감축과 개혁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나라에만” 이런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로존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마련한 뒤에”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에 따른 정부와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와 부실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독일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것이다.

하지만 ‘성실 이행’의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이를 만들고 실제 적용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유로존 차원 금융감독 시스템은 “유럽중앙은행(ECB) 내에 독립기구를 설치해 운영한다”고만 모호하게 합의했다. 그 기능과 권한 등 세부내용을 확정하려면 법규 등 실무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또다시 충돌이 일어나고 자칫 연말로 정한 시한 전에 실무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시장 불안이라는 급한 불은 일단 끈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진화책들이 당장 시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너무 양보했다. 패배했다”는 자국 내 비판을 받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 전제 조건들을 강조하고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었다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이런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시장에선 ‘악마는 세부적인데 숨어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경구가 거론되고 있다. 이 경구는 “큰 일도 성공 여부는 미세한 부분에서 판가름나며, 사소한 듯 보이는 곳에 실패를 부르는 악마가 교묘하게 숨어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구가 현실화될지 여부는 오는 9일과 10일 열릴 유로존과 EU 재무장관회의 등 후속 협의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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