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만에 공개된 北 베트남전 파병 ‘막전막후’

46년만에 공개된 北 베트남전 파병 ‘막전막후’

입력 2011-12-05 00:00
수정 2011-12-0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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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베트남 중앙군사위 자료 2건 공개

미국의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가 이달초 발간한 ‘북한 국제문서 연구사업(NKIDP)’ 보고서에는 북한군이 베트남전에 공군 부대를 파병하게 된 절차가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다.

‘베트남 상공의 북한군 조종사(North Korean Pilot in the Skies over Vietnam)’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1966년에 개최된 베트남군 중앙군사위원회 문건 2개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먼저 9월 21일 개최된 회의 문건은 ‘북한의 베트남전 파병 요청에 대한 보 구엔 지압 장군의 결정’에 관한 것이다.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보 구엔 지압(武元甲. 100) 장군은 베트남전에서 패한 미국의 언론조차 ‘생존하는 20세기 최고의 명장’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베트남의 전쟁영웅, 독립영웅으로 유명하다.

당시 회의에서 풍 테 타이 공군사령관은 지압 장군에게 ‘동맹’인 북한군이 자원 공군부대를 파병하겠다면서 베트남군 당국의 허가를 요청해왔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파병 북한군은 베트남 군복을 착용하게 되며, 조종사 외에 기술요원도 파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구압 장군은 “북한 공군 장병은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것이나 이들은 현실적으로 ‘자원병(volunteer soldiers)’”이라면서 “따라서 동맹을 존중해야겠지만 우리의 자주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군) 훈련이나 전투 과정에서 이들의 임무를 명확하게 부여해야 한다”며 “아울러 우리가 그들의 상관이 돼야 하겠지만 북한군 연대 내에서는 우리측 대표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압 장군은 특히 향후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양측의 공조 체계는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규정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회의 문건은 전했다.

이날 지압 장군이 내린 사실상의 ‘허가’에 따라 베트남군과 북한군은 같은달 24일부터 일주일간 공식 회담을 개최한다.

회담 마지막날인 9월 30일 개최된 중앙군사위원회 문건에 따르면 양측의 회담은 반 티안 둥 베트남군 참모총장과 최광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솔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최광 총참모장은 김일성 주석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한 ‘혁명 1세대’로 북한군 사단장, 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인민군 원수 등을 역임했으며, 1997년 사망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북한 군부의 2인자로 통했다.

회담 마지막날 양측은 6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북한군의 베트남 파병을 위한 공식 절차를 마무리한다.

첫번째 항에 따르면 우선 10월 말부터 11월초까지 북한이 베트남 미그17 중대(전투기 10대로 구성)에 ‘스페셜리스트’를 파병하며, 이어 베트남군이 충분한 전투기를 준비해 제2의 미그17 중대를 편성하면 북한이 1966년 말부터 1967년초까지 또다시 공군 부대를 파병하기로 했다.

또 1967년 베트남군 미그21 중대에 추가로 북한 공군장병을 보내기로 하는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파병키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북한군 스페셜리스트들로 구성된 중대는 처음에는 베트남 공군 연대에 배치돼 전투에 참가하되 궁극적으로는 연대 단위로 편성해 자체적으로 전투에 투입되도록 했다.

이밖에 북한군 중대는 베트남 공군의 지휘를 받고 통신 등 기술지원과 전투기 유지 등도 베트남군이 맡도록 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회의 문건은 “합의문에는 북한군의 거주시설, 생활물자, 수송장비, 의약품 지원과 함께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우드로윌슨센터가 진행 중인 ‘북한 국제문서 연구사업(NKIDP)’의 일환으로 발간된 이 보고서는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으로 베트남전 전문가인 멀 프리비나우가 지난달말 발굴한 2개의 문건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프리비나우는 “베트남전이 끝난지 25년이 지난 2000년에서야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북한 공군조종사의 베트남전 참전 사실을 양측이 인정했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베트남군 퇴역 소장이 1967년부터 1969년까지 87명의 북한 공군 장병이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들은 26대의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켰다고 증언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전투기 조종사 외에도 베트남전쟁에 100여명의 심리전 요원과 땅굴전문요원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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