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을지로에서 김꽃두레를 만났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김꽃두레를 연기하는 개그우먼 안영미는 김꽃두레 분장을 한 채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막 촬영을 마치고 온 터였다.
그에게 김꽃두레의 모습이 겹쳐진 것은 분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김꽃두레의 말투와 제스처가 그를 더욱 김꽃두레처럼 보이게 했다.
실제 김꽃두레는 그의 성격을 반영해서 만든 캐릭터다. 성대결절이 생기면서 김꽃두레의 허스키한 목소리도 얻었다.
”제가 살짝 10대 남자 청소년 같은 발언을 할 때가 많아요. 이 나이에도 철없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개그 아이디어를 내기도 쉬워요.”
김꽃두레의 껄렁대는 태도와 말투는 ‘생각없이 힘 빼고 하다 보니’ 나왔고 김꽃두레도 외모와 달리 예쁜 이름을 지어보자란 생각에서 별 뜻 없이 붙인 이름이다.
법칙 없는 그의 개그 방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개그가 달라진다는 그는 스스로 ‘개그계의 기분파’라 부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에요. 어떤 규칙도 없어요. 저만 즐거우면 된다는 마인드에요. 느낌 가는 대로 연기합니다.”
지금은 개그우먼이 천직이라 생각하지만 애초 그의 꿈은 연기자였다. 그를 개그우먼의 길로 이끈 2004년 KBS 19기 공채 개그맨 시험은 대학교수의 추천으로 경험 삼아 본 것이었다.
”그전에는 입버릇처럼 ‘영화배우가 될 거야’라고 했어요. 그때는 개그우먼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죠. ‘개그우먼은 못생겨야 하는데 나는 예뻐’ 그랬는데 합격이 된 거죠.(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1년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었단다.
그에게 개그의 맛을 알려준 것은 2005년 ‘개그콘서트’에서 강유미와 선보인 코너 ‘고고 예술속으로’였다.
그는 “그때 남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희열감을 느꼈다”며 “’이 맛에 개그하는구나’를 뒤늦게 안 거다. 그래서 그 끈을 못 놓겠더라”라고 돌아봤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개그콘서트’에서 ‘고고 예술속으로’와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끝나고 슬럼프가 왔다.
”방송 활동은 했지만 개그 무대에 서질 않으니 에너지가 빠지고 자신감이 없어져 힘들었어요. 그냥 방송만 하면 떳떳하게 명함을 내밀지 못하겠는 느낌이에요. 일단 다른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줘야 나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생기는데 그런 무대에 서질 않으니 어떤 걸 시켜도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tvN ‘코미디 빅리그’가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됐다.
그는 “’코빅’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분장실의 강선생님’ 때는 급작스럽게 이슈가 돼서 인기를 즐기질 못했는데 이제는 그때 못 누렸던 것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안영미는 김미려, 정주리와 함께 아메리카노 팀으로 출전한다. 아메리카노는 작년 가을시즌 후반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2위를 차지했고 겨울시즌에도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개성 강한 개그우먼끼리 뭉치다보니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각자 연기 색깔이 달라요. 초반에 다른 코너를 했는데 셋이 어우러지지 않았어요. 서로 받쳐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누가 누굴 받쳐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따로 노는 기분이었어요. 이번 시즌 코너를 바꿔볼까 했는데 감독님이 불안해 하시더라고요. 니네는 각자 나와서 혼자 해야 산다며.(웃음)”
이번 시즌에서 그와 강유미의 경쟁이 관심을 끈다. 이번 시즌에 합류한 강유미는 예상과 달리 아메리카노가 아닌 개통령 팀에 소속됐다.
안영미는 “내가 그렇게 아메리카노에 끼워달라 했는데 굳이 감독님이 다른 팀으로 넣더라”며 “우리는 친구인데 솔직히 맞대결, 라이벌이란 말은 싫다”고 아쉬워했다.
올해로 개그우먼 9년차. 개그우먼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처음에는 참 힘들다고 느꼈어요. 코미디에서 개그우먼들은 예쁘거나 못생긴 캐릭터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버라이어티에 오니까 캐릭터의 한계가 더 느껴지더라고요. 남자한테 우리가 막 들이대고 늘 망가지고. 우리가 여성성까지 버려가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고 다들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그나마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어제 개그우먼들이 모여서 이런 얘기로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우리끼리라도 서로 치켜세워주자’에요.(웃음)”
tvN ‘SNL 코리아’에 섹시한 기상 캐스터로 출연 중인 그는 최근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 촬영을 마쳤다. 정식 정극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요즘에는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고민이지만 그는 “욕심을 갖고 개그를 하면 안 된다”며 자신을 다잡았다.
”즐기면서 내려놓고 해야지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요즘 무대에서 잘 안 터져요. 관객분들도 (그런 부담을) 기가 막히게 아세요. 저도 정말 즐기고 싶어요. 1등이 된들 즐기지 못하면 뭐가 행복하겠습니까.”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