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그놈의 빚이 웬수지/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열린세상] 그놈의 빚이 웬수지/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입력 2011-08-17 00:00
수정 201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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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다. 미국은 훗날에 갚을 빚 증서(장기국채) 등급이 내려갔다고 어수선하고, 그 직격탄을 맞은 한국과 일본은 현기증이 나 어지럽다. 잘살려고 하는 경제성장인데 왜 이리 어지러운가? 결국 빚 때문이다. 빚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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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호 日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국중호 日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사업하느라 생기는 빚은 거래를 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업가나 개인은 자신이 나중에 갚아야 하는 강박감이 있기에 돈을 빌리는 데 무척 신중하다. 반면 정치가(또는 정책당국자)가 만드는 국가 빚은 개인 빚과는 성격이 다르다. 빚을 얻어 쓴(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한) 정치가는 ‘내가 이런 공사를 했다. 내 업적이다’라고 생색을 내지만 빚 갚는 데는 뒷전이다. 다음 정권도 물려받은 빚은 잘 갚지 않으려 한다. 앞 정권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인상이 싫기 때문이다. 빚을 갚다 자기 업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조바심도 깔려 있다.

상당수 정치가는 빚을 내 쓰는 자신의 정책은 효과가 커 늘어나는 세수입으로 갚으면 된다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비상시도 아닌데 빚을 내 쓴 선진국의 정책은 대개 실패했다. 선심성 지출이 대부분이고 개발도상국처럼 사회간접자본 투자라는 마땅한 투자처도 찾기 어렵다. 설령 경기가 좋아져 세수입이 늘어나도 자신의 정책으로 세수입이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빚을 갚기보다는 생색이 나는 다른 곳에 쓰려고 하는 게 정치인이다.

이처럼 쓰는 데 과감하고 갚는 데 인색한 게 국가채무의 속성이다. 그러다 보니 빚을 늘려놓고(잘했다는 정권조차도 빚을 줄이지는 못하고),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빚의 확대 재생산’이 나타난다. 미국, 일본만이 아니라 유럽(이탈리아,스페인 등) 국가의 재정적자 심각성이 그 증거들이다. 빚 때문에 그리스는 파탄났고, 포르투갈도 위험하다. 일본처럼 나랏빚이 너무 많을 때는 ‘내 정권 동안에는 파탄나지 않겠지’하며 빌려쓰는 데 익숙해져 버린다. 빚을 내 쓴다는 감각이 무뎌진다.

빚 재정을 키워놓은 데는 경제학자들도 한몫했다. 거시경제학의 한 축을 이루는 케인스 경제학에서는 ‘불황 때는 빚을 내(공채 발행) 지출을 늘리고, 경기가 좋아지면 빚을 갚으면 된다’는 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불행히도 거기에는 정치가의 이기심을 제어하는 장치가 없다. 불황 때는 빚을 내 경기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호황 때는 업적을 드러내려는 정치의 속성상 빚 줄이기를 주저한다. 이런 비대칭성으로 빚은 불어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지만 그렇게 먹은 양잿물은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온다. 1000조엔(한국 돈이라면 여태껏 사용해 보지 않은 단위인 1경 4000조원) 가까운 천문학적 금액의 빚만 불어나고 경기침체는 계속돼 온 일본이 그렇다. 빚쟁이 국가 일본을 미국이 닮아 갔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 빚으로 흥청망청 소비했고,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은 소비가 미덕이라며 그런 개인들에게 돈을 계속 대 주었다. 그 자금은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세계각국으로부터 들어왔다. 그 돈으로 빚잔치를 했고, 그러다 당한 게 2008년의 리먼 쇼크다.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러시아의 푸틴 총리는 ‘미국은 세계의 기생충’이라며 비난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그런 말을 할 여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미국 대중매체의 건전한 비판은 살아 있다. 미국 의회는 이달 초 채무규모 상한을 인상해 ‘채무불이행’이란 파국을 가까스로 면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일본화’ 현상을 지적했다. 증세나 세출 삭감이라는 고통이 따르는 결단을 뒤로 미루고, 당리와 자신의 몸보신(사익)을 우선하는 방식이 일본의 정치를 닮았다는 말이다.

서민의 빚은 무덤까지 따라오지만 나랏빚은 다르다. 빚놀이가 잘되면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잘 안 되면 ‘내 정권 때는 괜찮았다’고 도망칠 수 있으니, 정치가에게 나랏빚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다. 이렇게 돌을 던지는 나 또한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우리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게 빚 문제다. 빚더미를 짊어질 후세대를 염려하였다면 함부로 못할 짓이었다. ‘어이구, 그놈의 빚이 웬수지!’하던 우리네 역정은 진리였다. 역정의 해결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이타심이다.

2011-08-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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